“미안하기에 더욱 반갑다”… 대학생 탐사보도 취재비 전달

손 동작을 멈추고 망설임이 길어졌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지식이 부족한 탓도 있었지만, 기성 기자로서 제 자신의 삶의 이력을 지금 언론의 현실과 떼어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땅히 격려하고 축하하는 자리인데, 대체 뭐라고 써야 할까?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의 수상자들을 축하하는 상장의 문구가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잠을 설칠까 두려워 결국 신박하고 상서로운 용어는 포기하고 지극히 상투적인 덕담을 섞은 문구를 마무리하고 서둘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다음 날 10월 21일 오후,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대학생탐사공모전 수상자들의 취재비 전달식이 열렸습니다. 흔한 현수막도, 마이크도 따로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상을 주는 이와 받는 이들이 마주 앉았습니다.

6명의 학생들은 맵시있고 생기발랄했습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어도, 젊음 특유의 웃음과 넘치는 기운은 넉넉히 보이고 남았습니다. 김중배 이사장의 표현대로 ‘만화방창’한 모습이었습니다.

여든을 넘긴 김중배 이사장도 저와 생각이 비슷했을까요? 대학생 탐사공모전에 지원한 학생들은 대부분 기자와 PD 등 언론인을 꿈꾸고 있습니다.

“언론사를 지망하는 학생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가 되면, 굉장히 딜레마에 빠지죠. 단기적으로 현실적으로 볼 때, 어떤 언론사에 취업을 해서 일상적인 기본 생활을 보장받아야 하고, 또한 언론의 변화, 추이, 지향을 생각할 때는 양심적으로 말해서 지금 기존의 언론사의 언론행위가 지속돼서는 매우 관란하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내가 어느 쪽으로 말을 해야 할지 곤욕스러워요.” 
 – 김중배 뉴스타파함께재단 이사장

이날 김중배 뉴스타파함께재단 이사장은 학생들에게 “반갑다”는 말을 여러차례 반복했습니다.

“지금 소위 우리 언론에 흐르고 있는 현상과 대비되는 신선한 시선을 가지고 있구나. 나 같은 구닥다리가 기대했던 그러한 시선이 드디어 등장하는구나. 공치사가 아니라 역시 젊은이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근거가 분명히 있구나 하는 확신을 갖게 돼, 저는 반갑다는 말을 선택했어요”
 – 김중배 뉴스타파함께재단 이사장

이번에 수상자로 선정한 대학생들이 제출한 탐사보도 기획을 보면, 하나는 재개발로 공동체가 무너지고 뿔뿔히 흩어진 상도동 산65번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지난해부터 1년이 넘게 취재한 것이고, 또 하나는 외신의 기사와 국내의 기사가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지 분석하려는 문제의식을 담았습니다.

“작년 가을부터 상도동을 찾았어요. 어디를 통해서 세상에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처음에는 재개발, 재건축 이런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기사를 쓰기도 했어요. 지금은 마을 공동체가 무너지고 뿔뿔히 흩어진 사람들이 어디로 흘러 갔는지 제일 궁금해요”
– 이정숙 학생 <상도동 산 65번지 이야기>

“(대학에서) 저널리즘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우리 언론이 왜 이렇게 기사를 쓰는지 답답하고 안타까웠어요. 이번에 우리 언론이 직면한 위기가 무엇인지 취재해보고 싶어요”
– 신승엽 학생 <외신의 기사와 국내의 기사가 다른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인가>

겉으로는 평범하고 사소해 보이는 취재기획입니다. 하지만 기성기자가 쉬이 하지 못하는 끈질긴 근성과 사람에 대한 애착이 숨어 있었고, 굳어진 기성체제에 발칙한 도발을 하며 사안의 본질을 꿰뚫어보려는 전복의 기운이 느껴진 겁니다. 사소한 것에 사물의 본성이 깃들어 있습니다.

“사소한 것 같지만 사소한 데서 뭔가를 찾아내려고 하는 시도, 사실은 어떤 것을 사소하다고 할지 그걸 정하는 게 매우 어려워요. 통속적으로 사소한 것이라고 인식되는 문제 속에 아주 근본적인 문제가 얼마든지 내재할 수 있어요. 이제 그걸 추적해 들어가는 게 기본적으로는 탐사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해요.”
 – 김중배 뉴스타파함께재단 이사장

이번 공모전에 뽑힌 학생들에게는 팀별 300만 원의 취재비를 지원합니다. 뉴스타파 취재 기자가 멘토가 돼, 취재 제작에 도움을 드립니다. 또 취재 제작하는 동안, 뉴스타파함께센터가 마련한 스튜디오, 편집실, 회의실 등 협업 공간을 자유롭게 이용합니다.

환한 웃음의 학생들이 손에 꼭 쥐고 있는 상장에 새겨진 문구는 ‘부끄럽지만’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번 취재와 제작 경험을 통해 탐사보도와 저널리즘의 공익적 가치를 배우고 올바른 언론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랍니다.” 거짓과 혐오, 조작이 판치는 ‘포스트 트루스’ 시대의 기성언론 속에서 올해 연말이면, 학생들이 고생하면서 만든 탐사취재 결과물이 나옵니다. 뉴스타파 홈페이지와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합니다.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PS. 뉴스타파의 대학생 탐사보도 공모전은 올해가 두번째입니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두배 많은 48개 팀의 탐사기획안을 받았습니다. 질적으로도 기획의 수준이 매우 높았습니다. 최종 2개 팀을 선정하는 데, 꽤 애를 먹었습니다. 군 의문사, 지하수 문제 등 선정작에 버금가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웠던 기획안이 많았습니다. 예산이 허락한다면, 내년부터는 더 많은 학생들이 취재비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내년 이맘때 학생들의 신청작 면면이 어떨지 벌써 기다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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