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책③ “A good life.” 심인보 기자의 ‘워싱턴 포스트 만들기’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 1층의 북카페뉴스타파에는 뉴스타파 제작진이 기증한 수백 권의 책이 있습니다. 매주 한 권씩 도서를 기증한 기자를 만나 책 이야기를 듣는 시간, 주간 <기자와 책> 세 번째, 심인보 기자가 소개하는 ‘워싱턴 포스트 만들기’입니다.

Q. 책 소개

무려 26년 동안 워싱턴 포스트의 편집국장과 편집인을 역임했던 벤자민 브래들리의 자서전이다. 벤자민 브래들리는 영화 <더 포스트>에서 톰 행크스가 연기했던 바로 그 인물이다. 개인의 자서전이지만 케네디 대통령과의 일화, 그리고 펜타곤 페이퍼스와 워터게이트 사건의 자세한 내막이 기록되어 있어 매우 흥미진진하다. 지금 우리가 믿고 있는 저널리즘의 ‘표준’이 세워지던 시대의 속 얘기랄까. 그런데 이번에 다시 읽어보니 이 사람이 혹은 그의 세대가 세운 저널리즘의 ‘표준’이 정말 표준일까,라는 의구심도 들더라.

Q. 책을 읽게 된 계기

2014년 말이던가 2015년 초던가, 뉴스타파에 오기 위해 KBS에 사표를 낸 뒤 집에서 쉬고 있을 때, KBS 선배 기자가 책을 보내줬다. 내가 수습기자였을 때 캡(서울경찰청 출입 기자)을 맡았던 까마득한 선배였다. 당시 이미 절판된 책이었는데 중고로 사서 보내줬다. 아마 뉴스타파로 옮기지 말고 KBS에 남으라는 얘기를 이 책 한 권으로 대신했던 것 같다. 떠나지 말고 남아서 KBS를 워싱턴 포스트처럼 신뢰받는 언론으로 만들어 보자는 메시지라고 생각했다.
눈물나게 고마운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KBS를 워싱턴 포스트처럼 만드는 일이 내게는 이미 불가능하게 느껴졌다. 보내준 선배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책을 읽고 나니 오히려 KBS를 떠나 뉴스타파로 옮기겠다는 결심이 더 확고해졌다. 벤자민 브래들리의 ‘워싱턴 포스트 만들기’는 지금 한국에서 재현이 불가능한 얘기라는 걸 깨달았달까. 

Q. 한국에서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건 구체적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은 미국뿐 아니라 한국의 기자들에게도 일종의 신화다. 그런데 그 내막을 디테일하게 아는 기자들은 의외로 많지 않다. 물론 당시 취재와 보도를 직접 담당했던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라는 책을 썼고 동명의 영화도 만들어졌지만… 뭐랄까, 눈높이가 다르다는 느낌이다. 취재기자와 데스크 사이, 뉴스룸 조직과 언론사 사주 사이의 긴장과 협력 관계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이 현장 기자의 입장에서 이루어지는 ‘지상전’을 실감나게 다뤘다면 이 책은 당시 보도를 둘러싼 배경과 ‘공중전’을 더 자세히 쓰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공중전’을 자세히 읽다 보면 한편으로는 매우 감탄스럽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다소 허탈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 여기와는 맥락도 의미도 전혀 달라서 재현되기 어려운 사건이라는 게 너무나 분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벤자민 브래들리를 비롯한 당시의 미국 언론인들은 백인 주류 엘리트 사회의 핵심 멤버였으며 이 내밀한 멤버십에 취재와 보도를 상당 부분 의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 한 가지, 워터게이트 사건이라는 저널리즘의 ‘승리’는 당시 엄청난 성장을 구가하던, 가장 뜨거운 대중매체로서 신문의 위력과 주요 매체의 독과점으로 움직이던 여론시장 등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워싱턴 포스트의 사주로서 백악관의 협박과 경고에 당당히 맞섰던 캐서린 그레이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워싱턴 포스트로 많은 돈을 벌었다.) 지금 ‘레거시 미디어’라는 굴욕적인 명칭으로 불리는 신문 혹은 방송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다. 

물론 당시 사건의 복기로부터 배울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하면 지나치게 인색한 얘기이고,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거다. 신화를 깊이 알수록 신화는 역시 신화일 뿐이라고 깨닫게 된다는 것이 이 책을 읽는 진짜 의미일 수도 있겠다는 것. 바로 지금 즉 2020년에, 바로 여기 즉 한국에서 어떤 저널리즘을 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역시 스스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얘기인가. 
Q. 가장 인상적인 부분을 꼽자면? 

저자인 벤자민 브래들리는 케네디 대통령의 옆집에 살았고, 수시로 캠프 데이비드(이명박이 초대받은 것에 감읍해 기꺼이 골프카트의 운전대를 잡았던 바로 그 곳)에서 부부 동반 회동을 하는 사이였다. 얼마나 가까운 사이였냐면, 브래들리의 처형은 케네디 대통령과 바람이 났고, 브래들리의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을 때 케네디 대통령이 특별경호원을 보내 아이를 봐줬다. 대통령 선거 당일, 결과가 발표되는 날 역시 브래들리 부부는 케네디 부부와 함께 있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가까운 옆집 친구였던 셈이다. 그는 케네디를 이용해 수많은 특종을 했다. 그리고 약 10년 뒤 그는 케네디의 정적이었던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도록 하는 취재를 지휘한다. 지금의 한국 언론계에서라면 용납될 수 있는 일일까?

Q. 마지막 한줄평

이 책의 한국어 제목은 ‘워싱턴 포스트 만들기’지만 원제는 ‘멋진 인생’(A good Life)이라고 한다. 대통령과 친구도 먹고, 다른 대통령은 사임시키고, 결혼을 세 번이나 하고 자식을 다섯이나 낳았으니 스스로 멋진 인생이라고 자부할만 하다. 

부럽다. 부럽긴 한데, 역시 그것은 50년 전 미국 레거시 미디어의 황금기에 살았던 사람의 인생이다. 


기부: 심인보
구성: 조연우 

기자와 책 ② “내게 거짓말 마” 김용진 기자의 ‘935개 거짓말’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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