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친필원고의 매력① 쓰지 못한 ‘인간적 문장’ 상상하기…스핑크스의 코 서문

올해 12월이면 거짓우상과 독재권력에 맞섰던 언론인이자 지식인, 리영희 선생의 10주기를 맞습니다. 재단법인 뉴스타파함께센터(이사장 김중배, 이하 뉴스타파함께재단)는 리영희 선생의 유가족과 후배 언론인들의 기증을 받아 소장하고 있는 친필원고를 소개하는 글을 오늘부터 연재합니다. 
 친필원고는 나중에 인쇄한 책과 달리, 단어와 문장을 넣고 빼고 옮기고 삭제하는 퇴고의 흔적이 남아있어 집필 과정에서 저자가 가졌던 사유의 얼개와 고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같은 글이라도 친필원고와 함께 출간한 책을 비교해 본다면, 색다른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첫 시작으로 <스핑크스의 코> 서문입니다.

<스핑크스의 코>는 1998년 까치글방에서 출간했습니다. 이 책의 서문을 쓴 친필원고는 200자 원고지 12장을 꽉 채우고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이 남긴 주요 저서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남아 있는 친필원고입니다. 

선생은 ‘전환시대의 논리’(1974), ‘우상과 이성’(1977), ‘분단을 넘어서’(1984),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1994) 등 많은 저서를 세상에 남겼습니다. 하지만 현재 남아있는 친필원고는 손에 꼽습니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연행, 구금, 해직을 반복했고 끊임없이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았기에 자료와 기록을 제대로 보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던 자료도 수시로 공안기관에 압수됐습니다. <스핑크스의 코> 친필 서문이 각별하게 느껴지는 이유입니다.

선생은 1994년 가을, 한양대 교수직에서 정년 퇴직하고 서울 화양동에서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이 보이는 아파트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책 서문은 1998년 10월, 군포시 자택에서 집필했습니다. 선생 스스로 중국 근대 지식인 노신(魯迅)의 분류대로 짧은 글을 엮어놓은 잡문(雜文) 형식에 해당한다고 밝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의 종교, 문화, 언론, 민족과 통일 등을 바라보는 선생의 “심경과 생각들을 그때 그때 적은 것들”을 책으로 펴낸 것입니다. 

친필 서문에서 선생은 경기도 군포시로 거주 공간을 옮긴 사연을 말하고, 당시 고혈압 등 신체적 건강 상태를 고백하고, 특히 책의 제목을 ‘스핑크스의 코’로 결정한 이유와 함께 이 같은 글을 써야만 했던 사연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까치글방 박종만 사장의 출판인 정신에 깊은 사의를 표하고 있습니다.

리영희 선생은 당시 “조금은 명상적인 삶을 살면서 성찰의 생활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려고” 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선생은 그 이유를 몇가지로 언급하는데, 서문에 쓴 선생의 표현을 빌자면,  

“나는 앞으로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넉넉함과  평화 속에 되돌아보면서, 가끔은 좌선하는 마음으로 ‘ 제2의 인생’을 살고 싶었던 것이다. 너무나 오랜 세월을 외부적 현상과 변화에 대응해온 ‘남의 삶’에서 조금은 명상적인 ‘나의 삶’을 살고 생을 마감하고 싶은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런 방면의 독서를 하면서 성찰의 세계 속에서 우러나오는 글을 쓰려고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생활환경이나 시간적 여유가 허용되지 않았다.”

리영희 선생은 박정희 전두환 독재 정권에서 모두 8년 동안 교수직에서 쫓겨난 탓에, 노후생활을 보장해줄 연금 혜택을 박탈당해 누릴 수 없게 됐습니다. 이를 ‘항산(恒産)’을 갖추지 못했다고 표현합니다. 선생은 ‘연금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라는 문구를 ‘연금의 혜택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라고 고쳐 놓습니다. 선생은 한가한 제2의 인생을 누리지 못했습니다.    

“정년퇴직 후에 기대했던 한가한 제2의 인생은 제1.5의 인생이 되어 여전히 바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또한 오늘 여기 모여진 글들이 사회현상과 그 변화에 대응하는 성격의 것이 된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당시 정치적인 시대 상황도 선생이 제2의 인생을 살도록 놔두지 않았습니다. 전두환, 노태우 독재정권이 물러나고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들어섰지만, 세상은 선생이 바라던대로 바뀌지 않았습니다. 새로운 배신과 절망의 시대가 왔습니다.  

“40년 동안 이 나라를 휘감고 불었던 정치적 광풍과 사회에 몰아쳤던 거친 파도에 시달려 곤죽이 된 정신과 몸에게 폭풍이 걷힌 항구에 다다른 후의 휴식을 주고 싶었던 것이 5년 전의 솔직한 나의 심정이었다. 모양새나마 ‘문민정부’가 등장했고, 꿈에도 그리던 민주주의와 정직한 사회가 이루어지려는가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5년 동안은 새로운 배신과 절망의 시대로 흘러갔다.”

리영희 선생은 마지막 문장 즉 “그러나 그 5년 동안은 새로운 배신과 절망의 시대로 흘러갔다.”에서 처음에는 “배신과 절망과 분노와”라고 썼다가 ‘분노’, 단어를 빼고 “배신과 절망의 시대로”라고 수정합니다. 90년대 후반, 우리 사회는 퇴직한 노 교수의 평화로운 삶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쓰고 싶었던(뜻했던) 글들은 본의 아니게 다시 뒤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스스로 애석하게 생각한다” 

그렇다면, 리영희 선생이 진짜 쓰고 싶었던 글은 뭐였을까요? 선생이 남긴 친필원고에는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 있습니다. 바로 “사회적 문장, ???, ???, 촌평 (寸評)이 아니라 인간적 문장이라고 할까.”라는 문장입니다. 

이 글귀를 쓰는 과정에 고심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사회적 문장, 사회적 촌평’ 등의  문구를 펜으로 썼다가 지우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습니다. 선생이 처음에 썼던 두 개 정도의 단어는 그 정체가 무엇인지 알 수조차 없습니다. 선생은 밑줄을 두 번 그어, 꾹꾹 눌러 쓴 문장 전체를 삭제 표시했습니다. 결국 이 문장은 출간한 책에는 인쇄되지 않았고, 일반 독자들은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인간적 문장’을 쓰고 싶었던 선생의 안타까운 심경과 함께 그 문장을 밑줄로 애써 지움으로써 절제하고 추스리는 심경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선생이 진짜 쓰고 싶었던 “인간적 문장”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이전 글과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책을 덮고 눈을 감아 이런 상상을 합니다. 오로지 친필원고만이 줄 수 있는 매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친필원고 맨 위, ‘사회적 문장, 촌평이 아니라 인간적 문장이라고 할까’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리영희 선생은 “우리는 맑은 머리와 따뜻한 심장으로 아름다운 코가 뭉개지지 않은 원만한 국민사회로서의 스핑크스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라며 책의 서문을 마무리합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선생이 바라던 ‘인간적 문장’이 되지는 못했지만, ‘사회적 문장’으로서의 <스핑크스의 코>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한 울림이 있습니다. 

뉴스타파 전문위원이었고, 대통령 기록관리 전문위원으로 있는 전진한 알권리연구소 소장은 <스핑크스의 코>를 망설임없이 ‘내 인생의 책’으로 선택한 바 있습니다. 대학 시절, 그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선교사라는 목표에서 시민활동가가 되겠다는 꿈을 갖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라보는 대전환이 시작됐다”고 말했습니다. (경향신문, 2016.1.17)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에 오시면, 리영희 선생의 친필원고와 유품을 볼 수 있습니다. 단체 관람을 원할 경우, 뉴스타파함께재단 사무국으로 연락하세요.

관람 시간 : 평일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주소 :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12-13 뉴스타파함께센터 (충무로역 1번 출구 50미터)
문의 : 뉴스타파함께재단 사무국 02-6956-3665

글 정리 : 장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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