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친필원고의 매력③ 타인 같지 않은 인생 궤적… “노신을 좋아하는 까닭”

12월 5일은 거짓우상과 권력에 맞섰던 언론인이자 지식인, 리영희 선생의 10주기입니다. 재단법인 뉴스타파함께센터(이사장 김중배, 이하 뉴스타파함께재단)는 리영희 선생의 유가족과 후배 언론인들의 기증을 받아 소장하고 있는 친필원고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친필원고는 나중에 인쇄한 책과 달리, 단어와 문장을 넣고 빼고 옮기고 삭제하는 퇴고의 흔적이 남아있어 집필 과정에서 저자가 가졌던 사유의 얼개와 고심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자료입니다. 같은 글이라도 친필원고와 함께 출간한 책을 비교해 본다면, 색다른 지적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세 번째, 1997년 발표한 <노신을 좋아하는 까닭>입니다.

리영희 선생의 짧은 글 ‘노신을 좋아하는 까닭’은 언론 기고문입니다. 1997년 신동아 7월호 <명사를 감동시킨 119권의 책>에 실렸습니다. 1995년 한양대 교수에서 정년 퇴직하고, 경기도 군포시 수리산 기슭이 보이는 아파트로 삶의 공간을 옮겨 중국어를 다시 공부하던 무렵에 썼습니다. 내 인생의 책으로 『노신선집 魯迅選集』을 꼽았고 ‘노신을 좋아하는 까닭’을 고백합니다.  

선생은 본래 신동아에는 200자 원고지 세 장이 터질만큼, 꽉 채운 603자짜리 원고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지면에 실린 것은 535자입니다. 편집 과정에서 몇 개의 단어와 문장이 합쳐지거나 빠졌습니다. 지면 공간의 제약으로 편집자가 일부 고친 것으로 보입니다.     

원고지 세 장에 쓴 선생의 친필원고를 온전하게 보여 드립니다. 편집자의 때가 타지 않은 본래의 603자 원고 그대로입니다. 이번이 첫 공개입니다. 

글은 아주 짧고 문장도 비교적 쉽습니다. 모두 16문장인데 딱 적당한 단어로 구성해 군더더기가 없습니다. 속도감 있게 읽기에 좋습니다. 선생과 노신의 이야기를 펼치기 전에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노신(魯迅)을 좋아하는 까닭

리영희 (한양대 교수)

   나는 중국 근대작가 노신(魯迅)을 좋아한다. 노신(魯迅)을 좋아한다는 말은 그의 작품을 좋아할 뿐 아니라 노신(魯迅)이라는 인간을 함께 사랑하고 또 존경한다는 말이다.
노신의 문예작품과 평론문장은 언제 읽어도 새로운 감동을 준다. 읽고나면 한참동안 책을 놓고 깊은 생각에 잠기게 한다. 

그 작품의 시대는 내가 살고 있는 현재 장면과 환경은 지금의 한국과 세계, 그속의 인물들은 바로 나 자신과 주변의 이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구체적  ‘상황’(狀況)속에 구체적 ‘개인’(個人)의 삶을 배운다. 변혁의 사상을 배운다. 그리고 모든 작품 속에서 그가 앞으로는 질타하면서 뒤로는 울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 
그는 55년간의 짧은 인생을 유감없이 살고 갔다. 혹독한 권력의 탄압과

병고에 시달리면서도 불굴의 정신으로 5억의 우매한 머리를 깨우쳤다.
그는 해군사관 · 광산 · 철도기사 · 의학도 · 생물학 교사 · 문학교수  · 문학가 · 사상가의 길을 걸었다. 꽤나 우여곡절 많은 인생이다. 나의 비슷한 풍란의 인생 궤적때문에 더욱 타인 같지가 않다. 
  여러해 동안 그의 작품과 번역문 (영어 · 일어 ·한국어)을 대조하여 읽으면서 중문(中文)을 공부하는 것이 나의 일과의 일부이다. 무척 즐거운 시간이다. 남에게도 권하고 싶다. (끝)

노신 (루쉰, 魯迅 1881~1936)은 근대 중국의 문학가, 교수, 사상가, 혁명가입니다. 『광인일기』(1918년), 『아Q정전』(1921) 등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를 제외한 동아시아의 모든 근대 작가를 저울 한 쪽에 올리고 다른 한 쪽에 노신 한 사람을 올려 저울질을 해보는” 평론가들이 있을 정도입니다. 


루쉰 (1881~1936) 출처: 한겨레 자료사진

리영희 선생은 노신을 평생 사랑하고 존경했습니다. 사상과 글쓰기의 스승이었습니다. 노년에 선생은 노신의 나라 중국에 가 노신의 작품에 나오는 정다운 곳, 애수가 깃든 곳을 두루 찾았습니다. 그 곳에서 자신의 고향에 온 듯한 따스함과 정겨움을 느꼈습니다. 

이 글 말고도, 선생은 노신을 언급하는 많은 글을 남겼습니다. “노신과 나” 『自由人(자유인)』, 1990년), “노신을 바라보며” (『인간만사 새옹지마』1991년)”, “나의 스승 노신”(『스핑크스의 코』 1998년) 등입니다. 또 회고록이자 자서전인 『대화』(2005년 한길사)에도 노신이 여러차례 등장합니다. 


중국 노신 동상 앞에서 리영희 선생 (출처: 『대화』 (2005년, 한길사)

저널리스트, 학자로서 리영희의 삶과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인물을 꼽자면, 김구와 노신입니다. 비타협적 민족주의와 강직함을 백범에게 배웠다면, 글과 글쓰기 자세는 노신에게 얻었습니다. 우상과 권력을 공격할 때 드러나는 선생의 글쓰기와 문체는 노신의 글에 젖줄을 대고 있습니다.  

“나의 글 쓰는 정신이랄까, 마음가짐이랄까 하는 것은 바로 노신의 그것이에요. 글쓰는 기법, 문장 미(美), 속에서 타는 분노를 억누르면서 때로는 정공법으로, 때로는 비유 · 은유 · 풍자 · 유머 · 해학 · 익살로 상대방을 공격하는 세련된 문장작법을 그에게서 많이 배웠지요.”  『대화』 (2005년, 한길사)

노신의 글은 중국 민중, 특히 가난한 농민의 삶을 감상적으로 다루거나 미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의 무지, 탐욕, 위선, 허위 의식, 겉치레 등 약점과 치부를 냉정하게 묘사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향한 따뜻함을 유지합니다. 선생이 친필원고에서 “모든 작품 속에서 그가 앞으로는 질타하면서 뒤로는 울고 있는 따뜻한 마음을 느낀다.”고 쓴 이유입니다.  

“나는 그분의 인간에 대한 사랑, 특히 약자에 대한 사랑과 정신적 · 사상적 면모에 늘 변함없는 감명을 받았어요. 5억 중국인의 운명을 잡아주기 위해, 억압하는 자들로부터 가난한 자들을 해방하기 위해 ‘어떤 목적’으로 글을 써야 하는가? 글을 ‘어떻게’ 써야 하느냐? ‘누구를 위하여’ 쓰느냐? 등 글쓰기의 기본이념과 방법, 마음가짐을 노신의 글을 읽음으로써 터득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 (2005년, 한길사)


리영희 (1929 ~ 2010)  출처: 리영희재단

또한 선생은 노신의 삶에서 자신을 발견합니다. “나와 비슷한 풍란의 인생 궤적때문에 더욱 타인 같지가 않다”고 말합니다. 지식인이었던 선생과 노신의 인생은 유사한 면이 많습니다. 해군 사관과 해양대학교 항해과라는 교육의 편력과 교수라는 이력도 비슷합니다. 더구나 당시 처했던 폭압적 시대 상황, 정치적, 문화적 시련과 지식인으로서의 마땅한 응전, 그리고 ‘병고’라는 동병상련까지 겹쳐지고 포개집니다. 노신의 삶이 선생에게 각별하게 다가왔을 겁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습니다. 선생은 왜 魯迅을 중국어 발음인 ‘루쉰’이 아닌 한자 발음 그대로 ‘노신’으로 읽고 썼을까요? 선생은 처음에 각인된 ‘명칭이라는 것이 이미지 작용에 중요한 구실을 한다’고 말합니다. 

중국 베이징의 자금성 남쪽을 지키는 천안문(天安門)이 있습니다. 한자 발음인 ‘천안문’이 아니라 중국어 발음인 ‘텐안먼’으로 쓰고 읽으면 어떨까요? ‘天安門’이라는 상형문자가 담고 있는 시각적, 문화적, 역사적 어감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그런 정서와 비슷하지 않을까요? 저에게도 ‘쑨원’보다는 ‘손문’(孫文)이 더 정겹고 배우 ‘周潤發’은 ‘주윤발’이 제격이지 ‘저우룬파’는 다른 사람처럼 어색합니다.   

“나는 그를 중국 발음인 ‘루쉰’이라고 부르지 않고, 몇십 년 전에 그의 작품을 처음 대했던 때에 익힌 한자 발음대로 ‘노신’이라고 불러요. 노신이라고 불러야 나의 정서와 심상에는 그 인간 노신이 떠올라요. ‘루쉰’이라고 부르면 나에게는 내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그 노신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인물과 같은, 좀 서먹서먹한 느낌이 든다고. ”  『대화』 (2005년, 한길사 ) 

글 정리 : 장광연 

리영희 친필원고의 매력② 떨리는 오른손을 꾹 부여잡고 꾹꾹 써 내려간…

리영희 선생 친필원고 및 유품 상설전시 안내
시간: 평일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12-13 뉴스타파함께센터 (충무로역 1번 출구 50미터)
문의: 뉴스타파함께재단 사무국 02-6956-3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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