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Q. 책 소개
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첫 책입니다. 동시에 광주학살 현장을 가장 생생하게 기록한 유일한 책입니다. 이 책이 처음 출간된 건 전두환 정권 때인 1985년 (풀빛 출판사)이었습니다. 광주항쟁의 진실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때여서 엄청난 반향이 일었습니다. 출간에 관여한 사람들 대부분이 안기부 등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거나 구속됐습니다. 예정됐던 일이었습니다. 실제 집필자와 명목상 집필자가 달랐던 이유입니다.
3년 전 개정판이 나왔습니다. 초판보다 분량이 거의 두 배 가량 늘어났습니다. 1985년 초판이 주로 80년 5월 광주항쟁 당시 상황을 기록했다면, 개정판은 광주학살의 진실을 보여주는 엄청난 양의 실증 자료, 문서, 국내외 비밀기록들이 더해졌습니다.
개정판 출간 과정에도 역시 수많은 사람들이 참여했습니다. 개정판의 마지막 장 (587~589쪽)에는 수백 명의 개정판 간행위원 명단이 들어 있는데, 한명 한명 이름을 읽는 것만으로도 큰 감동을 주는 책입니다.

Q. 이 책을 추천한 이유
2013년 6월 뉴스타파는 ‘조세도피처의 한국인들’ 보도를 통해 전두환 씨의 장남 전재국 씨가 조세도피처에 ‘블루 아도니스’라는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사실을 밝혔습니다. 당시 최승호 PD의 앵커멘트는 다음과 같았습니다.
“한국사회에 과연 정의가 있는가. 우리 국민들이 이 질문을 던질 때 항상 생각하는 인물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총칼로 짓밟고도 멀쩡히 전직 대통령 예우를 받는 사람, 전재산이 29만 원이라며 추징금 납부를 거부하면서도 가신들을 데리고 해외 골프여행을 다니는 사람. 전두환 씨입니다…이 땅에 정의가 살아나느냐, 영원히 땅에 묻히느냐, 그 분수령 앞에 섰습니다.”
이 앵커멘트 속에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이하 넘어넘어)를 추천하는 이유가 함축돼 있습니다.
40년 전 빛고을 광주에서 벌어진 신군부의 집단학살 사건은 여전히 미완의 현대사입니다. 누가 시민들을 향해 총을 쏘도록 지시했는지조차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광주학살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가’,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끝까지 해결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우리 사회에 과연 정의가 살아 있는가’와 같은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넘어넘어’는 이 엄중한 시대적 과제에 질문과 대답을 동시에 주고 있는 소중한 기록입니다.
Q. 이 책만의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거의 30년 전 대학에 다닐 때 이 책을 처음 읽었습니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 같은 책이어서 읽었습니다. 이런 책이 나왔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고, 의무감(?)에 읽었던 것 같습니다. 소설처럼 느끼며 읽었던 기억도 나고 흔하디 흔한 ‘운동권 서적’ 정도로 생각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기자가 된 뒤, 종종 전두환과 관련된 취재를 할 때마다 다시 꺼내 읽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또 볼 때마다 이 책은 제게 새로운 질문과 과제, 그리고 영감을 주었습니다. 2017년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고 반가운 마음에 사서 봤는데, 이번에는 책 내용보다 이 책이 만들어진 과정, 기록을 모으고 정리하고 분석한 과정을 적은 저자들의 글에 더 눈이 끌렸습니다. 그 어떤 탐사보도보다 실증적이고 체계적인 기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취재-제작과정을 읽으면서 긴박했던 상황을 눈앞에서 보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저자들은 광주항쟁이 유혈진압으로 끝나고 군사독재가 국민들의 입과 귀를 막고, 눈을 감게 만든 시절 이 책을 기획하고 실행에 옮겼습니다. 또 37년이나 지나 다시 기록을 검토하고, 새로운 증거자료를 발굴하고 분석해 역사의 빈칸을 채웠습니다. 존재 자체가 감동적이고 존경스러운 책입니다.

Q. 기억하고 싶은 부분, 소개하고 싶은 대목
이 책이 담고 있는 내용은 직접 읽고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내용보다 이 책의 집필 책임자인 이재의(현 5·18기념재단 비상임 연구위원) 선생이 개정판의 끝에 붙인 글을 소개할까 합니다. 기록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이어야 하는지, 기록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자료 수집에 협력했던 주요 인사들은 다음과 같다. 교계에서는 강신석(목사), 정등룡(목사), 나상기(기독교농민운동), 최철(기독청년회) 등이 도왔다. 부상자나 사망자에 대한 자료는 전홍준(내과의사), 윤장현(안과의사), 등 의료계 인사들이 챙겨다 가져다 주었다. 김양래(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는 천주교 쪽 자료 수집을 맡았고 이승용(당시 전남대 총학생회 부회장)은 학생 관련 자료를, 황일봉(전 광주광역시 남구청장)은 양서조합 독서클럽 회원을 중심으로 자료를 모았다. 항쟁 당시 ‘투사회보’를 제작한 들불야학팀의 경우는 김성섭(당시 노동자)를 중심으로 윤순호, 전소연, 오경민 등이 나서서 자료를 수집했다. 구속자들의 뒷바라지를 하던 여성모임 송백회 회원들도 협력하였다.”
“소준섭은 수집된 자료와 증언 가운데 너무 과장됐다고 생각되거나 사실성이 결여된 것으로 여겨지는 내용들은 정리 대상에서 배제하였다. 확인된 사실만 기록한다는 방침이었다. 마침내 (1981년) 5월이 되자 ‘광주백서’ 정리가 완성되었다. ‘광주백서’ 초고는 200자 원고지 약 500매 분량이었다.”
“분야별 주요 취재 대상은 다음과 같다. 투쟁위원회와 도청 최후상황은 시민군 지도부였던 투쟁위원회 위원장 김종배, 부위원장 정상용, 고 허규정, 기획위원 이양현, 윤강옥, 민원실장 정해직, 안길정 등에게 들었다. 5·18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연결고리로 재판에 회부된 정동년, 김상윤 등과도 만나 계엄 당국이 5·18과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을 억지로 연결하기 위해 어떤 조작을 하였는지 상세하게 들었다. 도청 앞 분수대 궐기대회 상황은 홍보부장이었던 고 박효선을 비롯해 전남대생으로 궐기대회 사회를 맡았던 김태종, 김선출 등이 증언했다. ‘투사회보’에 대해서는 전용호, 김성섭이, 시민군 분야는 투쟁위원회 상황실장 박남선, 윤석루, 김태찬, 김원갑, 위성삼, 나명관, 김상집 등이 증언하였다. 전투지역별로는 화정동, 산수동, 교도소 부근, 지원동, 운암동, 백운동 등 광주에서 함평, 담양, 화순, 장성, 나주 방향으로 이어지는 외곽지역 계엄군과의 대치지역 전투상황을 주로 취재했다.”
“두 달 가량의 취재를 마치고 집필 작업은 1985년 1월초부터 시작했다. 작업은 주로 조양훈과 이재의 두 사람의 신혼집을 번갈아 옮겨가면서 극비리에 진행했다. 남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 창문에 담요를 쳐서 불빛이 새어나가는 것을 막아가면서 밤새워 일하고 낮에는 잠을 자곤 하였다. 이재의가 원고를 연필로 노트에다 써 내려갔다. 조양훈은 날짜별로 시민군과 계엄군의 대치상황을 여러장의 지도로 그려냈고, 항쟁 이후 5·18단체의 움직임을 마지막 장의 원고로 작성했다.”
“원고가 완성되자 정상용이 나서서 명목상 집필을 책임져 줄 사람과 출판사를 물색하였다. 책이 출간되면 집필자는 물론이고 출판사 대표도 모두 구속될 것이 예상되는 상황이었다. 몇몇 원로급 인사를 만나 부탁했지만 모두 난색을 표명했다. 여기저기 의사를 타진하던 중 전남사회운동협의회 전계량 대표가 책임지겠다고 동의했다…이제 어떤 인물을 집필자로 할 것인가만 남았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서울과 광주에서 민주화운동가들이 몇차례 회의를 하였다. 서울에서는 정상용, 문국주, 나병식, 광주에서는 정용화, 이재의, 전용호 등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황석영 소설가가 좋겠다는 의견이 나왔다…황석영은 이 자리에서 집필 책임을 맡겠다고 수락했다. 나병식과 황석영이 출판과 집필의 책임을 전적으로 감당하겠다는 결정을 한 것이다. 당시 상황으로 보아 조직사건이 될 수도 있으니 출판사와 집필자 두 사람 외에는 그 누구에게도 피해가 확산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참석자들의 생각이었다.”

Q. 마지막 한줄평
대한민국에 ‘정의’가 꽃피기를 바란다면, 지금 당장 이 책을 보라.
한상진 기자는 2019년 8월부터 정의의 역사를 기록하고 학살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기 위한 <전두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여전히 ‘힘이 센 권력자’인 전두환과 그 잔당들의 추적을 계속하고 있다.
기부: 한상진 구성: 조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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