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영희 친필원고의 매력⑤ 20년 전 글을 편하게 읽지 못하는 이유… 제4회 만해상 수상소감

“60명 정도 되는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이렇게 멋진 밥상을 차려놔요. 그럼 저는 맛있게 먹기만 하면 되는 거거든요.”

15년 전쯤, 배우 황정민이 모 영화상을 받으며 했던 말입니다. 상 자체보다 수상소감이 더 유명세를 탔습니다. 리영희 선생도 생전 여러 상을  받았습니다. 1995년 <단재상>(단재 신채호), 1999년 <늦봄 통일상>(문익환 목사),  2000년 <만해상>(만해 한용운), 2007년 <한겨레통일문화상> 등입니다. 독립운동가의 뜻을 이어받고 통일운동에 헌신한 이에게 주어지는 상입니다. 선생은 수상 소감으로 어떤 말을 남겼을까? 

오늘 소개할 친필원고는 제4회 만해상(실천상) 수상 소감입니다. 만해상은 만해 한용운의 삶과 정신을 기려 제정한 상입니다. 상은 모두 6개 분야로 나눠 주는데, 그 중 실천상을 으뜸으로 여깁니다. 이 수상 소감은 리영희 선생의 열두 번째 저작집, <21세기 아침의 사색> (한길사, 2006년)에 실린 바 있습니다. 때는 2000년 8월 9일, 강원도 설악산 백담사입니다. 수상 소감의 글 전체에서 “두렵다”는 단어는 세 번, “부끄럽다”는 말은  두 번 등장합니다.   

 “무릇 상(賞)의 권위는 상의 주격(主格)과 상이 주어진 대상자의 품격으로 평가됩니다. 상의 주격이 높고 거룩한 데, 상의 대상자가 그 이름에 어울리지 못하거나 오히려 그 이름을 욕되게 한다면 상의 권위에 흠이 될 수 있습니다. “

“제 4회 만해상의 수상자의 한 사람으로 저같은 위인이 선정되었다는 일은 혹시라도 상의 권위를 욕되게 하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만해상의 주격이 무엇이며 누구입니까? 만해 한용운 선생이 아닙니까. 한용운 선생은 우리나라 근대사가 낳은 가장 탁월한 학자이며 종교인이며, 문학가이며 사상가이며 동시에 사회운동가이며 국민계몽가였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외국여행에서 돌아와 뒤늦게 제4회 만해상 수상자 선정발표에 관한 국내 신문기사를 전해받고, 영광이나 기쁨의 생각보다는그와 같은 두려움이 앞섰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심정을 선양회 당사자에게 피력하고 사양의 뜻을 밝힌 바 있습니다. “

이렇게 선생은 ‘상받기’를 사양했지만 받아 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학자로서의 40년의 인생을 돌아봅니다. 거의 가망이 없는 절망의 상황에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역사의 과녁으로 돌진했던 우직한 삶이었습니다. 선생은 중국 장자에 등장하는 고사성어 당랑거철(螳螂車轍)을 빗대 자신을 ‘수레바퀴에 앞 다리를 들고 맞서는 무모한 사마귀’에 비유합니다.

“제가 한 일이 있다면, 그것은 다만 1960년대서부터 오늘까지, 우리 사회내에서 분단된 민족간의 편견과 증오와 적대감정, 전쟁을 부추기는 국가체제, 정권, 정책, 그 권력 집단과 개인들 그리고 민주적 자유와 권리를 억압하는 실상에 대항해서 글과 말과 행동으로 일관되게 싸와 온 것 뿐입니다. 그것은 옛 이야기에 나오는, 전차의 앞길을 가로막으려고 앞다리를 들고 서는 사마귀(당랑)에 다름없는 우직에 지나지 않습니다.
(,,,중략…)
하지만, 그런 고통스러운 삶을 보상할만한, 그리고 그런 핍박을 무릅쓴만큼의 소기의 사회적, 민족적 성과가 있었는지의 물음에는 자신있게 답변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런 까닭에 거룩한 한용운 선생의 이름으로 주어지는 “실천상”을 드는 손이 부끄러움으로 떨립니다. ”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우직함과 ‘당랑거철’의 무모함 덕에 세상은 조금씩 바뀝니다. 그걸 당대에는 미처 감지하지 못할뿐입니다. 만해상 시상식이 열리기 두 달 전, 세상을 놀라게 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김정일 두 정상이 만나 남북공동선언을 합니다.  “가슴벅찬 변화를 보면서 선생의 실천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이었습니다. 한평생 한반도 분단체제 극복을 위해 싸워온 선생에게 이 때가 보람있고 기뻤던 시기였을 겁니다.  

“머리가 어지럽다”, “현기증이 멈추지 않는다” 3일간의 남북정상회담을 지켜보고 다섯 항목의 공동선언(합의)문을 읽은 남북 칠천만 겨레의 지금의 심경과 충격은 바로 이 두 마디의 표현으로 집약된다. 그것은 웬만큼은 예측한 나의 심경이기도 하다. 영원히 강대국 위주의 냉전의 빙하에 파묻혀진 줄 알았던 한(조선)반도가 다시 힘차게 회전을 시작한 것이다.   (리영희, 한겨레신문 칼럼, 2000.6.16)

“마침내 분단된 민족간에 반세기만의 화해의 다리가 놓여지는 가슴벅찬 변화를 보면서 저는 자신의 실천이 무의미하지 않았다는 보람과 기쁨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끝”  (2000.8.9. 백담사)

리영희 선생과 함께 역사적인 6.15남북공동선언을 지켜본 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남북 관계는 수많은 부침을 반복했습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남북의 관계는 퇴보했습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금도 교착 상태는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20년 전 선생이 쓴 만해상 수상 소감문을 마음 편하게 읽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리영희 친필원고 소개는 다음편에도 계속합니다. 

글 : 장광연 

리영희 친필원고의 매력④ ‘사람을 그리다’, 연세대 최 교수에게

리영희 선생 친필원고 및 유품 상설전시 안내
–시간: 평일 9시부터 저녁 6시까지
–장소: 서울특별시 중구 퇴계로 212-13 뉴스타파함께센터 (충무로역 1번 출구 50미터)
–문의: 뉴스타파함께재단 사무국 02-6956-3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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