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와책⑦ 냉정한 팩트와 따뜻한 시선의 사이에서…박중석 기자의 ‘은유로서의 질병’

뉴스타파함께센터 1층의 ‘북카페뉴스타파’에는 뉴스타파 제작진이 기증한 수백 권의 책이 있습니다. 매주 한 권씩 도서를 기증한 기자를 만나 책 이야기를 듣는 시간, 주간 <기자와 책> 일곱 번째, 박중석 기자가 소개하는 『은유로서의 질병』(이후, 2002년)입니다. 

Q. 책 소개 

미국의 에세이 작가이자 평론가, 사회운동가인 수전 손택(1933 – 2004)이 1978년과 1989년에 쓴 두 개의 글을 묶어 낸 책이다. 제목의 메타포와 달리 내용은 현학적이거나 어렵지 않다. 42년 전 글이라고 믿기지 않게 질병이 함축하는 음험하고 퀘퀘한 공포를 놀랍도록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저자 수전 손택은 실천하는 지식인이었는데, 1980년대 한국을 방문해 수감된 김남주 시인 등의 석방을 촉구했고 9·11테러 이후 부시 정부의 대외정책과 전쟁을 비판했다. 

Q. 어떤 내용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질병은 질병이다.”라고 저자 수전 손택은 말한다. ‘질병은 삶을 따라다니는 그늘, 삶이 건네준 성가신 선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은유로서의 질병’은 전혀 다른 존재가 된다. 결핵, 암, 한센병, 에이즈 등이 대표적이다. 대단히 불길하고 혐오스럽고 비위상하는 것이 된다. 나아가 빈곤, 결핍, 저주, 광기, 야만, 징벌의 이미지로 치환되고 폭력, 차별, 집단학살(제노사이드)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된다. 

가령, 모든 사회적 일탈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된다. 범죄 행위가 질병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가 비난받거나 처벌받아야 할 존재가 아니라, 이해되고 치료받고 교정받아야 할 존재가 된다. 이렇게 범죄자가 환자처럼 동정적으로 다뤄지는 반면, 환자는 잘못을 저지른 범죄자처럼 처벌받는다. 또한 질병(암)은 인과응보의 결과라는 인식이 퍼진다. 환자들은 자신이 당연히 병을 앓을 만한 짓을 했을 것이라는 죄책감에 시달려야 한다. 왜 그래야 하는가. 환자를 더 고립시키고 재활의지마저 꺾어버리는 짓을.

수전 손택은 500년에 걸친 서구의 수많은 문학, 예술작품과 사회적 관념체계에서 질병을 둘러싼 은유, 환상, 이미지, 낙인, 저주, 편견, 증오를 들춰내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생각하는 질병과 관련한 모든 것에 ‘의문 부호’를 던진다. 이를 통해 우리가 무심코 쓰고 내뱉는 관용구, 농담, 단어 등의 사용에 더 신경쓰고 신중해야 함을 알려준다. “너는 사회의 암적인 존재야”, “너 그러다 병 걸린다.”, “날씨가 염병할 정도로 춥네.”, “답답해 암 걸리겠다. 빨리 말해.” 등 말이다. 기사에 비유로 등장하는 ‘악성 종양’, ‘발암’, ‘암 세포’, ‘괴저’ 등도 마찬가지다. 

이런 지독한 표현을 조심해야 하는 이유는 특정 환자인 누군가의 상처로만 머물지 않고, 공동체 전체로 해악이 퍼지기 때문이다. 수십 년, 수 세기에 걸쳐 뿌리내린 ‘은유로서의 질병’의 사악한 표현은 은연 중 집단 증오와 혐오의 논거로, 우월한 다수와 소수를 배타적으로 구분짓는 차별의 논리로,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력의 정당성을 부여하는 기제로 쓰인다. 히틀러는 유태인을 ‘매독 환자’로 지칭했다. 은유로서의 질병의 신화는 무척 견고한데, 저자인 수전 손택조차 미국이 베트남에서 자행하고 있는 전쟁에 절망한 나머지 “백인종은 인류 역사의 암이다”라고 쓴 적이 있다고 고백할 정도다. 

Q. 책을 처음 읽게 된 계기

내 직업(기자) 특성 때문이다. 2000년 KBS에 입사해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방송 언어 사용에 엄격했고 까다롭게 배웠다. 국경을 넘는다는 뜻의 월경(越境)은 동음이의어인 월경(月經)을 연상하기에 사용해서는 안되는 단어였다. ‘및’은 ‘밑’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역시 금기였다. ‘벙어리 냉가슴’, ‘눈 먼 돈’ 같은 관용구도 방송용어로 불가했다. 방송 언어의 선택에 신중을 요구받은 직업이었던 탓에 2002년 한국어판으로 출간되자마자 구입해 읽었다. 

 Q. 왜 이 책을 추천했는지? 지금 읽어야 하는 이유는?

수많은 책 중에 한 권을 고르라는 건 온당하지 못할 뿐 아니라 가혹하기까지 하다. 이건 독서량이 많든 적든 마찬가지다. 고심끝에 이 책을 택한 것은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맞닥뜨린 상황 유사성 때문이다. 코로나19는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질병일지 몰라도 수치스러운 질병은 결코 아니다. 그런데도 코로나19에 감염된 사실에 미안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을 넘어서 죄인 취급받는다. 일부 직장에는 확진자를 문책한다는 소문도 나온다. 여기에 ‘확찐자’라는 말도 쉽게 쓴다. 코로나19로 집에만 있어 살이 찐다는 뜻인 모양인데, 황선우 작가는 “코로나19 확진자를 타자로 대상화하고 자신은 안전하고 건강하다고 믿는 오만함이 묻어난다”고 꼬집는다. 

어디 이뿐인가. 난독증, 귀머거리, 처녀작, 미망인, 진지충, 조선족, 외쿡사람, 흑형, 홍어, 짱깨, 때개문, 문재앙, 닭그네까지 조롱, 차별, 폭력, 증오의 언어를 거리낌없이 내뱉는다. ‘촌철살인’이라는 미명하에 상대를 조리돌림하고 만신창이로 만들고 나서도 직성이 안 풀린다. 타인에 대한 배려는 없다.  

“재치 있고 웃긴 말을 쓰고 싶은 유혹이 들 때 멈추고 들여다 본다. 그 말의 중심에 누가 있는지 살펴본다. 어떤 이를 단순한 선입견으로 판단하거나 주변으로 밀어내고 있는지, 어디에다 선을 긋고 누구를 타자화하면서 성립하는 웃음인지를. 언어는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환경이다. 내가 차별받고 싶지 않듯이 내 말이나 글로 누군가를 차별하지 않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단어장의 어휘를 늘리는 일만이 아니라, 차별의 언어가 스며있지 않나 점검하고 솎아내는 일도 2020년을 살아가는 시민으로서 필수적인 업데이트다.” (황선우 작가)

Q. 평소 저널리즘 책은 잘 보지 않는다고 들었다. 북카페에 기부한 100권이 넘는 책도 모두 인문, 예술, 철학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책 역시 저널리즘분야의 책은 아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북카페에 140여 권의 책을 기부한 박중석 기자

저널리즘 관련 책이 무얼 의미하는지 알지 못하지만, 몇해 전까지만해도 나와 직업이 같은 저널리스트가 쓴 책을 멀리했다. 미장센을 베낄까 다른 감독의 작품을 보지 않는다는 모 영화감독처럼 나 역시 저자가 소개하는 취재기법을 베끼고 싶은 유혹이 들 것 같아서였다.  한때 내 스타일대로 취재하고 싶던 시기가 있었다. 지금은 다행히 바뀌었지만. 더구나 기자로 일하면서 이 책이 많은 영향을 줬다. 단지 언어 사용의 신중함, 언어가 내포한 폭력성을 경계하라는 의미만은 아니다. 비판의 대상인 취재원에게 따뜻한 시선과 애정을 가져야 함을 배웠다고 할까. 

굉장히 힘든 게 취재 대상과의 관계다. ‘뉴스는 권력이 있는 누군가가 감추고 싶어하는 소식이다. 그렇지 않은 모든 것은 광고다.’ 취재 대상이  감추고 싶은 일탈, 반칙, 비위를 들춰내려면 그 대상과 긴장관계로 불편한 것은 어쩔 수 없다. 고약한 상황도 수시로 생긴다. 그러나 취재를 통해 ‘굴복’이 아닌 ‘승복’을 이끌어내려면, 대상을 향한 이해, 애정은 필수다. “당신의  기사는 적절한 비판으로 수용한다’는 반향을 얻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흔히 사회정의를 위해 거악과 싸운다는 정의감을 불태우는 기자들이 있다. 하지만 처단해야 할 ‘거악’이나 ‘악의 축’은 극히 드물다. 또 존재 자체가 부정되는 취재 대상도 거의 없다. 대부분의 취재 대상은 비판의 대상이지 싸움의 전리품이 아니다. 언론, 검찰, 국정원, 사법부도 바꾸고 고쳐야 할 개혁의 대상이지 없애고 파괴해야 할 조직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말하자면 좋은 기자는 보도 내용이 훌륭해야할 뿐 아니라 좋은 취재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것이다. 요즘 나를 포함해 많은 기자들이 잔뜩 힘이 들어가고 날이 서 있다. 갓 뜯어낸 A4용지의 끝처럼 언제든 쓱하고 벨 준비가 돼 있다. 보도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팩트로 이뤄야 하지만, 시선은 따뜻함을 유지해야 한다. 그래야 더 나은 사회를 위한 저널리즘의 목적을 이룰 수 있다.

내 바로 옆자리에 최승호 PD가 있는데, 지난달 한 강연에서 최 선배가 했던 말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저에게는 저널리즘의 두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첫째, 진실 추구이며 둘째, 비판 대상의 목소리도 담으려는 노력입니다. 진실 추구는 언론인이 추구해야 할 당연한 가치입니다. 하지만 간혹 섣부른 정의감 때문에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팩트만을 보도에 담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이를 경계해야 합니다. 지금은 내 성향에 맞는 뉴스만 선택적으로 소비하는 시대인 것 같습니다. 이런 시대에는 의도적이라도 다양한 의견을 담을 필요가 있습니다.”  (최승호 PD, 2020.11.28. 한일학생포럼 강연 ) 

Q 마지막 한줄평 

“질병은 그저 질병이다. 치료해야 할 그 무엇일 뿐이다.” 

마찬가지로 “저널리즘은 저널리즘이다. 민주주의와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그 무엇일 뿐이다.” 

P.S 이 책을 읽고 실망하지 않았다면 수전 손택의 또 다른 책 <타인의 고통>을 소개한다.  기자에게 공감능력은 중요하다. 

▲박중석 기자가 북카페에 기부한 <타인의 고통>

기부: 박중석 구성: 조연우

북카페뉴스타파 인스타그램 

기자와책⑥ “기본기의 중요함에 대하여” 홍우람 기자의 ‘방송보도실무’ 다시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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