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현대사에서 언론은 언제나 개혁을 요구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거짓과 혐오로 분열을 부추기고, 공익이 아닌 사익을 앞세운 탁류의 극한을 보여줍니다. 올해 1월 한 달 동안, 언론인을 꿈꾸는 4명의 청년이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탐사저널리즘 겨울연수>를 함께 보냈습니다.  
예비 언론인들이 선정한 탐사 주제는 언론입니다. 무심코 흘러가는 지역의 민영 방송 뉴스 뒤에 숨은 '회장님'의 실체를 추적했습니다. 데이터 저널리즘과 취재 기법으로 벼려낸 탐사보도 연수결과물을 공개합니다. <지역 민방 ‘대주주 보도’ 추적: 新족벌의 발견> 시리즈를 세 편으로 나눠 연재합니다.

① 회장님, 우리동네 뉴스의 지배자
② 뉴스 가치: 모기업에 유리한가
③ 방통위 사무실에 잠든 '대주주 보도' 보고서  

빗나간 예측, 기대를 뛰어넘는 빠른 공개


(2편 먼저 읽기)
 

서울 충무로 뉴스타파함께센터에서 겨울연수를 마치기 사흘 전인 1월 26일. 기다리던 ‘자료’가 도착했다. 발신처는 방송통신위원회. 방통위에 정보 공개를 청구한 지 일주일 만이다. 당초 거부할 것이라는 예상을 빗나간 빠른 공개였다.

기대를 뛰어넘는 성과에 모두가 흥분했다. 전국 9개 지역 민방이 작성한 ‘대주주 보도 보고서’를 처음으로 입수한 것이다. 각 민방이 ‘사주 관련 보도’를 몇 건이나 했는지 스스로 조사해 방통위에 보고한 자료다.

방통위는 방송법 제17조에 따라, 지상파방송사업자를 허가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과 공정성을 준수하도록 감독하는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방통위는 지난해부터 9개 지역 민방에 1년에 두 번, 자사 뉴스와 프로그램에 최대주주 관련 방송이 몇 번 나갔는지 조사해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사주의 방송 개입과 방송의 사유화를 막기 위한 장치다.

방통위가 민방에 이러한 보고서 제출을 요구한 데는 그럴만한 까닭이 있다. 3년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당시 방통위가 발표한 ‘2017년 지상파방송사업자 재허가 백서’를 보자. 이 백서에는 지역 민방의 대주주 관련 보도의 폐해가 분명하게 적시돼 있다. 그 당시 재허가 심사를 받았던 TJB 대전방송과 KNN 부산방송에 대한 지적이다.

대전방송 및 KNN 등 지역 민영방송들은 광고매출이 줄어들고 있고, 더욱이 광고배분 방식 등 열악한 수입구조로 인하여 경영상의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으나 – 내부구조를 살펴보면, 정상적 근무를 하지도 않는 최대출자사의 지배주주가 회장(방송 비전문가)이라는 직함으로 고액의 연봉과 불필요한 사무실 유지 등 비용지출 부담을 유발하고 있으며 방송의 독립성을 저해(지배주주와 관련한 사회활동을 보도 강요 등) 요인도 되고 있음.

-방통위 2017년도 지상파방송사업자 재허가 백서, 88쪽

“지배주주와 관련한 사회활동을 보도 강요”라는 언급이 눈에 띈다. 연수생 취재팀이 제기한 문제의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3년 전 방통위도 방송 사유화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통위는 적극 조치하지 않았다. 대신 ‘이행 각서를 제출하라는 조건’을 달아 두 방송사에 재허가 승인을 내줬다. “전문경영인의 독립적 경영을 위해, 최다액 출자자가 방송사 운영 및 내부 인사 업무에 관여하지 않을 것”을 요구하는 이행 각서였다. 민방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이었다.

2년 뒤, 2019년 이번에는 나머지 7개 지역 민방이 재허가 심사를 받았다. CJB, G1, JIBS, JTV, KBC, TBC, UBC 등이다. 이때도 방송의 사유화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악화됐다.

하지만 방통위는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않았다. 이번에도 민방 스스로 대책을 마련하라는 식으로 대응했다. 방통위는 ‘최다액주주의 사업이 방송을 통해 홍보되는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자체 심의 제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리고 방통위는 ‘최대주주(특수관계자 포함) 관련 보도와 관련 프로그램 방송 현황을 매반기 종료 후 1개월 이내에 방송통신위원회에 제출’하도록 지역 9개 민방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모든 민방에 재허가 승인을 냈다. 이로부터 1년이 흘렀다. 지역 민방이 제출한 ‘대주주 보도 보고서’가 방통위 사무실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 있을 것이다.

과연 각 민방은 어떤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해 제출했을까. 방통위는 보고서를 받고 어떤 후속대책을 내놨을까. <뉴스타파 탐사저널리즘 2021 겨울 연수생 취재팀>이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7개 민방의 ‘대주주 보도 보고서’를 최초 공개한다. (2017년에 재허가를 받은 TJB, KNN은 올해 상반기부터 해당 조건이 적용돼 자료가 존재하지 않았다.)

‘최대주주 보도’ 방통위 집계 VS 연수생 집계, 누가 맞을까

지난해 1월부터 12월까지, 1년 동안 7개 지역 민방이 방통위에 제출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 건수는 25건이다. CJB가 모두 8건으로 1등이다. KBC 2등(7건), G1 3등(6건)이다. UBC는 3건, JTV는 1건으로 보고했다. JIBS와 TBC는 대주주 관련 보도를 한 건도 하지 않았다고 신고했다.

보고가 정확할까. 연수생 취재팀은 검증했다. 데이터저널리즘 기법을 활용해 각 민방 홈페이지에서 최대주주 보도를 자체 수집·집계했다. 방통위에 보고되지 않은 최대주주 보도가 대거 나왔다. 각 민방이 대주주 보도 횟수를 축소, 누락해 방통위에 제출한 것이다.

축소 유형은 두 가지다. 첫째, 최대주주가 언급되거나 등장한 보도인데도 아예 누락한 경우다. 둘째, 같은 내용의 보도를 당일 또는 이틀에 걸쳐 여러 번 송출하고도 1건으로 축소 집계한 경우다. 즉, 반복 송출 횟수를 계산하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확인된 사례를 모두 집계해 새로 작성했다. 그 결과, 전국 7개 민방의 최대주주 보도 횟수는 모두 60건이다. 방통위에 보고한 25건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35건을 누락, 축소한 것이다. 민방 7곳 중 4곳이 엉터리 보고서를 제출했다. 4곳은 G1, CJB, KBC, JTV이다.

▲2020년 ‘지역민방 최대주주 관련 보도’ 방통위-연수생 조사 결과 비교 (출처: 뉴스타파 연수생 취재팀, 방통위)바옹

방송사별로는 ▲G1 19건(단순 누락 7건 + 반복송출 12건) ▲CJB 9건(단순 누락 5건 + 반복송출 4건) ▲JTV 6건(단순 누락 4건 + 반복송출 2건) ▲KBC 1건(단순 누락)이다. 민방 4곳이 방통위에 보고하지 않고 누락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의 제목을 아래 표로 정리했다.

▲4개 지역 민방이 2020년 방통위 보고에서 누락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 목록 (출처: 뉴스타파 연수생 취재팀)

우선,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곳은 G1이다. G1은 방통위에 6건을 보고했는데, 연수생 취재팀 집계는 19건이나 많은 25건이다. 확인결과, G1은 반복 송출한 건수를 무시하고 딱 1회로 처리해 보고했다. G1이 보고한 6건 모두 각각 다른 시간대에 2~3번씩 반복해 송출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렇게 최대주주 보도를 반복 송출하고도 횟수를 1건으로 축소해 보고한 방송사는 G1과 JTV 2곳이다. 취재팀은 같은 내용이라도 실제 방송한 횟수를 모두 계산해 집계하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다른 민방도 송출 횟수를 모두 집계해 보고하고 있었다. 가령 CJB는 최대주주 보도를 반복해 방송한 경우, 그 횟수만큼 누적 집계했다.

꼼수 ① ‘회장님’ 검색어를 단순하게 줄여라

이번엔 CJB를 살펴보자. CJB가 방통위에 보고한 최대주주 보도는 8건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반복 송출을 ‘정직하게’ 계산했다는 수치다. 

그런데, CJB의 보고서에서도 문제가 발견됐다. 연수생 취재팀은 CJB의 최대주주 보도를 더 찾아냈다. 무려 17건이었다. 9건이 늘어난 것이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질문에 답하기 위해선 우선 CJB가 최대주주 관련 보도를 어떻게 선별하고 집계했는지 그 ‘꼼수’를 알아봐야 한다.

CJB 측은 “대주주 관련 내용을 홈페이지 검색 시스템에서 ‘두진건설’‘청주상공회의소’로 검색하여 집계한 실적”이라고 취재팀에 설명했다. 즉, 대주주 관련 키워드 2가지만 임의로 선택해 검색했다는 것이다. 

▲CJB가 방통위 보고에 누락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들. (출처: CJB)

CJB의 검색 방식대로라면, 취재팀이 추가로 확인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를 놓치게 된다. 예컨대 CJB 사주인 “이두영 회장”은 다양한 직함으로 활동했고, 그때마다 보도가 됐다. 따라서 관련 키워드를 모두 검색하지 않으면 ‘검색의 사각지대’가 생기는 것이다.

실제 CJB는 이두영 회장을 ‘충북상공회의소 협의회장’, ‘충북경제단체협의회장’ 등 다양한 직함으로 보도했다. 그런데도 CJB는 해당 보도를 방통위에 보고하지 않았다. 충북상공회의소나 충북경제단체협의회가 아닌, 유독 ‘청주상공회의소’라는 검색어만 사용해 집계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이런 식으로 금방 들통나는 장난을 쳐도, 방통위는 전혀 문제 삼지 못했다. (그 이유는 뒤에서 설명한다.) 

꼼수 ② 장소와 때에 따라 ‘회장님’의 직함은 다르다?

강원 G1의 최대주주는 SG건설이다. 조창진 회장이 G1의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G1이 방통위에 공식 보고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는 6건이다. 이 가운데 조창진 회장이 직접 등장하는 보도 3건을 살펴보자. 모두 조 회장을 GI 강원민방 회장 또는 대표이사로 지칭하고 있다.   

먼저 지난해 3월 보도. 조창진 G1 회장이 도내 화훼농가 지원 릴레이 캠페인에 참여해 꽃다발을 나누는 모습이 저녁 메인뉴스에 이틀 동안 두 차례 나갔다. 또 같은 해 8월, G1은 “조창진 G1 강원민방 회장은 오늘 본사 로비에서 캠페인에 참여하며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임직원들과 함께 힘을 보태기로” 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G1 뉴스 영상에서 “G1 강원민방 회장 조창진”이라는 최대주주의 직함과 이름이 가까이 클로즈업되고 있다. (출처: G1 유튜브)

그러나 이 3건의 보도말고, 취재팀이 확인한 조 회장을 다룬 G1의 보도는 더 많다. 다만 이들 보도에선 조 회장의 직함, 직책이 조금 다르게 나온다. 그런데 G1은 자사 뉴스에 조 회장이 ‘G1 회장, 대표자’라는 자막으로 나가지 않을 경우, 최대주주의 보도 집계에서 뺐다. ‘회장님’을 ‘도플갱어’로 만드는 식이다.  

예들 들어, 조창진 회장이 ‘강원경찰장학회 이사장’과 ‘원주상공회의소장’ 등으로 보도하는 경우다. 모두 최대주주 보도건수에 빠져 있다. G1은 “특정 기업 대표의 성격이 아닌, 강원경찰장학회 회장(이사장)으로서의 역할 수행과 관계된 내용으로 방통위의 (최대주주 관련 보도 제출) 취지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제출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런 G1의 해명은 군색하다. 직함이 달라졌지 사람이 바뀐 건 아니다. 게다가 2020년 2월 7일자 <강원경찰장학회, 정기 이사회 개최> 보도에서, 조 회장은 자신의 직함을 강원경찰장학회 이사장인 동시에 ‘강원민방 대표’라고 밝히고 있다. 따라서 G1은 최대주주 관련 보도에 해당한다고 방통위에 보고했어야 한다.

▲상기 G1 보도들은 조창진 회장이 등장했지만 방통위 보고에는 빠졌다. (출처: G1 유튜브)

같은 민방인 CJB가 방통위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G1의 해명은 더욱 설득력을 잃는다. CJB의 경우 대주주 이두영 회장이 청주상공회의소 의장 등 외부 기관·단체 직함으로 등장한 보도들도 (물론 CJB도 일부 누락하긴 했지만) 원칙적으로 최대주주 보도로 판단해 방통위에 보고했다.

이처럼 방송 재허가의 조건이 걸린 중대한 보고이지만, 각 민방들은 제각각 자의적인 기준으로 최대주주 보도를 신고했다. 최대주주가 등장하는 보도의 정의를 어떻게 규정하느냐, 그 판단에 따라 최대주주 보도의 집계는 얼마든지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 민방은 당연히 줄이려는 쪽으로 움직였다. 이때 중요한 게 방통위의 역할이다. 명확하고 분명한 기준을 제시하고 관리, 감독을 해야 한다. (방통위 취재는 뒤에서 자세히 다룬다.) 

꼼수 ③ “제출 기준? 내 맘이다!” 

JTV 전주방송은 방통위에 최대주주 관련 보도가 단 1건이라고 보고했다. 2020년 1월 17일자 JTV 8뉴스에서 내보낸 <수소차.충전소 확대…수소산업 활기> 기사가 그것이다. 그런데 연수생 취재팀의 확인 결과, JTV는 모기업 일진그룹의 계열사 ‘일진복합소재’ 기업명이 노출된 보도는 더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재팀이 찾아낸 2020년 7월 6일과 7일, 일진복합소재가 등장한 JTV 기사 3건을 읽어보자.

전주와 군산, 완주가 전국에서 처음으로 탄소융복합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됐습니다. 일진복합소재와 탄소융합기술원 등 10개 기업과 6개 기관은 올해부터 2024년까지 탄소섬유를 사용한 소형 선박과 수소 운송 용기, 소방차의 소화수 탱크의 실증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습니다.

<탄소융복합산업 규제자유특구 지정>, JTV, 2020.7.6

전주와 군산, 완주가 탄소융복합산업 규제자유특구로 지정돼 앞으로 4년간 자유로운 실증 연구와 개발이 가능해졌습니다. 한국탄소융합기술원과 일진복합소재 등 16개 기관과 기업이 참여합니다.

<규제자유특구’ 지정…탄소시장 열린다>, JTV, 2020.7.6~7.7, 3회 반복 송출

현대차와 일진복합소재 같은 수소기업에, 수소시범도시까지 선정돼 날개를 단 완주는 K뉴딜을 발판 삼아 한국의 수소 중심도시로 도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K뉴딜 성공을 위한 전략과 과제는?>, JTV, 2020.11.2

위 세 건의 기사 모두, JTV 최대주주 관계사인 ‘일진복합소재’가 영상과 기자 내레이션으로 등장하고 있다. 그러나 JTV는 방통위에 보고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뭘까.

JTV는 다소 엉뚱한 답변을 내놨다. 위 3개의 보도가 “일진복합소재에 특혜를 주는 내용이 아니라고 판단”해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최대주주 관련 보도의 정의를 ‘특혜성 여부’로 판단했다는 것인데, JTV가 판단하는 기준은 대단히 자의적일 수밖에 없다. JTV는 또 전북 규제자유특구를 다룬 보도의 경우, “특구의 핵심기업이 일진복합소재이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잠깐 언급’했으며, 일진복합소재가 아닌 지자체 역할에 초점을 둔 뉴스였다”고 주장했다. 

JTV가 인정하고 방통위에 제출한 ‘최대주주 관련 보도’를 다시 읽어 보자. <수소차.충전소 확대…수소산업 활기.> JTV는 전북 수소전기차 업계를 찾은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수소저장용기를 생산하는 ‘일진복합소재’는 대형 트럭과 건설기계 등 수소전기 차량의 영역 확대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JTV의 설명대로라면, 최대주주에 특혜를 준 보도임을 JTV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특혜성 보도가 맞다면, 보고에 그칠 게 아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의 제재를 받아야 할 일이다.

▲JTV 뉴스영상 안에 “이호승 경제수석님의 일진복합소재 방문을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보인다. (출처: JTV)

사유화된 지역 민방, 사주 특권 강화의 도구로

제4기 방심위 위원을 지낸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화상인터뷰에서 “지역 민방의 보도와 방송 프로그램의 사유화가 만연한 것은 방송의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김재영 교수는 “방송사 내부적으로는 대주주의 이해관계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조직 문화가 내면화됐다”고 비판했다.

“심지어 대주주가 직접 방송사에 상주하거나 대리인을 파견해 시시콜콜한 업무까지 지시하고, 대주주의 취향에 따라 지역성과 무관한 아이템이 특집 프로그램으로 제작되는 등 대주주의 노골적 개입은 비일비재하고, 경영부터 편성·제작에 이르기까지 대주주의 일탈적 개입이 고질화되어 있다.”

-김재영 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 / 제4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

김재영 교수는 영향력이 작은 언론사도 그 자체가 하나의 권력, 즉 “상징 자본으로 기능한다”고 강조한다. 김 교수는 “언론사 사주라는 이유만으로 누릴 수 있는 특권이 상당수”라며 “각종 이익단체나 조직의 임원 타이틀을 손쉽게 획득하는 것도 이 맥락에서 파악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동원 전국언론노동조합 정책실장은 “민영방송 대주주들은 부동산 정책, 정부의 소유, 규제 정책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정치적 영향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민방이 ‘상징자본’의 역할을 맡게 된다”고 평가했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지역 민방 대부분 (경영상) 수지타산이 좋은 곳이 별로 없는데, 사업자가 방송 사업을 하는 이유는 사유화를 통해 본인과 사업에 대한 홍보를 강화할 수 있어 그런 것을 (돈으로) 환산했을 때 훨씬 이익이라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위원장)는 “지역 민방 보도의 감시망은 더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모기업의 홍보 기사 뿐만 아니라 관, 지역 정치인들과 유착 기사들도 얼마나 있는지 확대해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보공개청구의 힘…뒤늦게 방통위에 정정자료 낸 민방들

뉴스타파 연수생 취재팀은 정보공개 청구로 방통위에서 받은 <대주주 보도 보고서>를 검토하면서 이상한 점을 더 발견했다. G1과 CJB의 보고 내역이 수상했다. 

당초 두 방송사는 2020년 상반기 보고에서 ‘대주주 관련 보도나 방송은 1건도 없다’고 방통위에 보고했다. 그런데 반 년이 흐른 뒤, 올해 1월 25일 갑자기 지난해 상반기에 최대주주 관련 보도를 한 적이 있다고 제출 자료를 수정했다. G1은 ‘4건’, CJB는 ‘6건’의 대주주 보도을 했다고 방통위에 다시 제출한 것이다.

두 민방이 이렇게 ‘이실직고’하고 제대로 수정 보고한 이유는 뭘까. 공교롭게도 방통위가 취재팀에 관련 정보를 공개하기로 결정(1월 26일)한 바로 전날에 벌어진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G1과 CJB, 두 민방이 방통위에 보고한 내용을 부랴부랴 정정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G1, CJB의 ‘2020년 최대주주 관련 보도 현황’ 정정 내역(붉은색 표시) (출처: 방통위)

상황은 이랬다. 연수생 취재팀이 방통위에 최대주주 보도 보고서의 정보공개를 청구하자, 그때부터 방통위도, 민방도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알고보니, 취재팀이 정보공개 청구를 하기 전까지, 방통위는 각 민방이 제대로 된 자료를 제출했는지, 보도 건수를 축소·누락한 것은 아닌지 점검을 하지 않았다. 보고서가 올라오는 대로 사무실 컴퓨터에 쌓아두기만 했다. 그러다 느닺없이 정보공개 청구가 들어왔던 것이다. 

방통위 관계자는 “(취재팀의) 정보공개 청구 이후, 제출해야 될 자료의 기준을 방송사에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좋은 기사든 나쁜 기사든 대주주와 관련된 기사를 무조건 다 제출하라”고 지시했다며, 이를 통해 관련 보고서를 다시 받았다고 설명했다. 연수생들의 정보공개 요청이 없었다면, 2020년 상반기 G1과 CJB 두 민방의 대주주 보도는 계속 0건으로 기록돼 있지 않았을까. 

‘자료 허위 제출’ 민방, 제재는?…손놓은 방통위

지역 민방이 최대주주 관련 보도 목록을 제출하라는 의무 조항이 생긴 지 1년이 지났다. 더구나 방송 재허가를 내주는 조건으로 제출받는 중차대한 보고서다. 그러나 상당수 민방은 보도 건수를 축소·누락하고, 임의의 기준으로 엉터리 자료를 제출하고 있다. 방송 재허가 조건의 이행 여부를 감독해야 할 방통위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방통위는 뉴스타파 연수생들에게 보낸 정보공개자료에서 지역 민방들이 ‘최대주주 관련 보도 및 방송 현황’ 자료를 누락, 허위보고할 경우 경중에 따라 제재할 수 있다고 답했다.

제도, 규정이 아닌 “직업적 상식”이 업무의 기준?

최대주주 관련 보도·방송프로그램 판단을 위한 별도 기준이나 세부 지침도 없다. 방통위는 보고서 제출만 의무화했을 뿐, 어떤 내용을 작성할지 세부 지침을 마련하지 않았다. 감독 기준도 별도로 없다. 각 민방이 다양한 직함별로 사주의 동정을 취사 선택하는 방식으로 보고 건수를 축소해도 문제 삼을 수 없다.  

이에 대한 방통위 관계자의 답변은 상식 밖이었다. “제출된 (최대주주 관련 보도 현황) 자료를 방통위 직원의 직업적 상식을 기준으로 문제가 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고 답했다. 규정이나 가이드라인 등 제도가 아닌 공무원의 양심, 상식이 판단의 기준이라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또 있다. 방송의 공영성 확보를 위한 양대 기관인 방통위와 방심위의 업무 연계가 꽉 막혀 있다.  지난해 12월 방심위는 ‘방송 심의 규정’을 개정했다. 최다액 출자자 또는 경영권을 실질적으로 지배하는 자와 관련 있는 특정 기업의 상품에 부당하게 이익을 줄 수 있는 내용의 보도를 금지하는 조항을 신설한 것이다. 쉽게 말해 사주를 위한 방송 사유를 차단하겠다는 조치다.

그런데 연수생 취재팀의 확인 결과, 방통위는 매 반기마다 민방이 제출한 최대주주 보도 보고서를 쌓아두기만 할 뿐, 방심위에는 보고서를 제공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1년이 넘도록 방심위는 방통위가 ‘대주주 보도 보고서’를 제출받고 있다는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한석현 YMCA 시청자시민운동본부 팀장은 방송 재허가의 조건 이행 여부를 감독하는 별도 기구가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한 팀장은 “방통위가 (재허가) 조건을 내걸지만 그 조건을 이행했는지, 어겼는지 주먹구구식으로 판단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재허가 심사 때 부여된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는지 판단하는 심사위원회를 따로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한 팀장은 2019년도 지상파방송사업자 재허가 심사위원을 맡은 바 있다.

대주주 이해충돌 보도 목록, 전면 공개해야

지역 민방 뉴스가 썩고 병들고 있다. 대주주의 특권 강화를 위한 방송사유화의 도구가 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 시민과 시청자들은 알아채기 어렵다. 연수생 취재팀이 세 편의 기사에서 분석했듯이 민방의 ‘대주주 헌정 보도’는 은밀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고, 감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민방 내부의 자정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민방 제작진 사이에선 해도 안된다는 ‘패배주의’가 농후하다. 시청자위원회는 대주주 보도에 한없이 관대하다. 방통위는 ‘직업적 상식’에 기대겠다는 말을 할 뿐, 수수방관하고 있다. 방심위는 대주주 보고서가 있는지 파악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시청자, 시민들이 감시에 나설 수밖에 없다.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져야 한다. 민방을 지배하는 대주주 관련 보도 보고서를 방통위에 쌓아둘 게 아니라 누구나 쉽게 볼 수 있도록 공시해야 한다. 박상인 서울대 교수는 “방통위 공시가 이뤄진다면 시청자나 시민들의 제보가 이어질 수 있어 대주주 보도를 억제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고, 보도의 공정성 증대라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개가 최선의 감시다.


2021년 뉴스타파 겨울연수생 4명(박인규, 이자인, 장한서, 황다혜)은 지역 민방의 보도 감시가 더 활발해질 수 있도록 취재 과정에서 수집·집계한 ‘최근 5년간 지역 민방 대주주 관련 보도 목록’을 방통위를 대신해 뉴스타파 데이터 포털에 공개합니다. 또 정보공개 청구로 확인한 방통위의 엉터리 집계 자료도 함께 공개합니다. 이 자료는 뉴스타파 언론개혁 대시보드에서도 같이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겨울연수생 4명 중 2명이 연수 이후, 언론사에 합격해 기자 생활을 막 시작했습니다. 2014년 시작하고 지금까지 106명이 뉴스타파 탐사보도 연수를 경험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언론사 기자와 피디가 됐고, 또 일부는 뉴스타파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뉴스타파와 함께 한 모든 연수생들이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보탬이 되는 올바른 언론인으로 성장하기를 축원합니다. <끝>

취재박인규 이자인 장한서 황다예 (뉴스타파 연수생)
취재 도움홍우람
데이터 도움최윤원 김강민
연수 진행장광연
데스크박중석
디자인 이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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