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은 혼자 서는 것을 의미하지만, 홀로 이룰 수 없는 것이 독립입니다. ‘함께’ 하지 않으면 독립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독립(獨立)의 아이러니’에 대한 뉴스타파함께재단 김중배 이사장의 설명입니다. 마찬가지로 독립언론(인)은 홀로 태어난 적도 없고, 홀로 제 기능을 발휘할 수도 없습니다. 뉴스타파함께재단이 2020년 7월 설립 이후, 독립언론, 미래의 언론인들과 연대하고 협업하며 끊임없이 인연을 쌓아 나가는 이유입니다. – 편집자 설명
아침 7시 40분, 이른바 ‘0교시’가 시작됩니다. 수업은 저녁까지 쉼 없이 이어집니다. 이게 끝이 아니죠. 늦은 밤까지 ‘야자’ 즉 야간 자율학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 10대 자녀를 둔 아버지·어머니 세대가 겪었던 학교의 모습입니다. 정말 ‘이상한 학교’입니다.
▲2000년대 고등학교 수업 시간표 (출처 : 구글검색)
2020년 뉴스타파 독립다큐멘터리 지원작품에 선정돼 8월 13일 방송한 박동덕 감독의 <아주 이상한 학교>에 등장하는 학교도 정말 ‘이상한 학교’입니다. 배움이 일어나는 모든 자리가 학교이고, 배움을 주는 모든 사건과 사람이 스승이라고 말하는 학교인데요. 학생인 청소년이 스스로 주체가 되는 새로운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아예 학교라는 간판을 떼 버린 곳이죠. 그런데, 진짜로 ‘이상한 학교’는 어디일까요? 박동덕 감독은 이렇게 묻습니다. “우리가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은 아닐까요?”
방송 이후, 시청자들의 반응은 대단했습니다. 몇 가지 댓글을 제시하면 이렇습니다.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문제 아이들이, 집에서도 포기하여 기숙하며 최후의 보루로 다닐 수 있는 실험 교육정도로만 생각했는데. 교육의 의미를 삶과 존재의 의미부터 설명해 주시는데. 감동했습니다.”
“정말 이상한 학교를 고발하는 뉴스일거라는 편견이 있었습니다. 그런 편견을 그런 편견을 가진 저 자신을 고발하는 프로네요. 너무 인상깊게 잘 봤습니다.”
“제목보고 이번엔 또 학교에서 무슨일이 하고 마음이 무거웠는데 뜻밖의 내용에 시간가는줄도 뉴스타파 채널인줄도 모르고 봤네요. 왠지 모르게 보너스 받은 느낌 ㅎ”
“우리가 한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의 순수한 사랑과 아름다움을 배우게 되어 감사하고 삼무곡 학생들이 훌륭하게 성장하여 주길 기원합니다.”
“좀 충격이네요. 뉴스타파가 이런거도 방송한다고? 대형 방송사였으면 저렇게 찍을 수 있나? 어느정도 친해져야 거부감 없이 나올텐데 제작진 분들께 감사하다고 말하고 싶네요.”
“늙은 나에게도 너무 많은 교훈이 되어 긴 내용을 보면서 ..다시 또 보고 배움의 자료로 하고 싶네요.후원의 가치가 충분하고…고맙습니다.”
“광복절 아침에 보려고 아껴 둔 영상!! 다시 그 나이로 돌아가 상무곡 다녀 보고 싶네요. 경쟁도 없고 현재의 교육시스템 보다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것을 진정으로 배우는 과정 같아요.”
▲박동덕 독립감독
뉴스타파함께재단은 8월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의 한 공유 사무실에서 박동덕 독립감독을 만났습니다. 이번 작품이 뉴스타파함께재단과는 첫 협업이었는데, 박 감독은 지난 20년 동안 KBS 현장르포 제3지대, KBS 인간극장, EBS 프라임에서 외주제작 PD로 일했습니다.
Q. 소개해 주세요.
이번 <아주 이상한 학교>를 연출한 박동덕PD입니다. 아직 ‘독립감독’이라는 표현이 어색하네요.(웃음)
Q. 방송사에서 외주제작 PD를 한 이유는?
원래 영화감독을 꿈꿨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이라 혼자 글을 쓰고 영화를 보고 그런 것을 좋아했어요. 대학 학보사에서 시·소설 이런 공모도 하잖아요. 그때 제가 쓴 소설이 가작으로 당선됐어요. <선택>이라는 제목의 소설인데, 당시 시국을 그린 거였죠. 학생운동을 하던 대학생이 군대에 가면서 생기는 스토리입니다. 당시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1991년 5월 김지하 시인의 조선일보 칼럼)라는 글에 분노해 썼던 거 같아요. 사회가 한 인간의 죽음을 폭력적으로 다루는 방식을 소설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졸업할 때 즈음, 한국영화아카데미와 당시 MBC의 ‘베스트극장’을 제작하던 ‘제일영상’이라는 프로덕션에 지원했어요. 그런데 아카데미 실기 시험 일정과 입사 시험 일정이 겹쳤는데, 일단 돈을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제일영상에서 일을 시작하게 됐죠. 그 뒤로 ‘제3지대’라는 방송과 KBS ‘인간극장’ 등을 연출하며 PD로 자리를 잡게 됐어요.
Q. 기억에 남는 방송 프로그램은?
KBS 인간극장 <삼룡이와 순애>가 기억에 남아요. 당시 화제도 많이 됐었고 시청률도 좋았어요. 이 스토리가 나중에 영화화되기도 했고요. 황정민과 임수정이 주연을 맡은 허진호 감독의 <행복>이라는 영화가 그거예요. 또 현장르포 제3지대에서 카지노 딜러를 주제로 방송을 한 번 했었는데, 그것도 당시 시청률 3등인가 했을 거예요. 지금 생각해 보니, 주로 시청률이 높았던 작품들이 기억에 남네요.(웃음)
Q. 뉴스타파 독립다큐 공모전에 신청한 이유?
방송을 그만두려고 했어요. 몇 년 전에 딸아이가 먼저 세상을 뜨고 몸이 굉장히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일을 그만두고 명상을 하면서 몸과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어요. 그러다 우연히 삼무곡의 현곡 선생을 알게 됐어요. 자연스럽게 삼무곡이라는 학교도 알게 됐고요.
굉장히 특이한 학교더라고요. 아이들이 하루 종일 게임을 하게 내버려 두고요. 그래서 이 학교를 취재해 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가 뉴스타파 독립다큐 공모전이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지원하게 됐어요. 그리고 사실 저 뉴스타파 회원이에요. 그래서 공모전을 한다는 사실은 원래 알고 있었어요.
▲삼무곡청소년마을 (강원도 속초시 원덕읍 사곡리)
Q. 삼무곡 학생들을 설명해주세요
학생들 구성은 굉장히 다양해요. 보통의 대안학교가 그렇듯이, 기존 학교에서 적응을 하지 못해 온 친구들이 있어요. 일반 학교의 경쟁 시스템이 몸에 맞지 않는 아이들이 있죠. 그런 시스템이 맞지 않아서 오는 친구들이 절반 정도 되는 거 같고요. 이 친구들도 여기서는 단체 생활을 잘 해요. 영상에서도 잘 드러나죠.
그리고 대안 학교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이 보내는 경우도 많아요. 이런 분들은 다양한 대안학교들의 교육 과정을 살펴보고 삼무곡이 우리 아이에게 잘 맞을 거 같다고 생각해서 아이를 입학시키는 거죠. 그리고 경기도 파주시에 삼무곡 어린이 마을이 있어요. 주로 방학 때 어린이 캠프를 여는데, 캠프를 경험한 친구들이 오는 경우도 있어요. 이외에도 현곡 선생과 인연이 닿아서 다니는 경우도 있고요.
▲삼무곡청소년마을 학생들
Q. 삼무곡의 학부모들도 어떤 분들인지 궁금해요
학생들만큼이나 다양해요.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인텔리 계층부터 소시민까지 다양한 분들이 계십니다. 다양하지만 만나보면 대안교육에 상당히 만족해하는 거 같았어요.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세요. 평소 화를 많이 내던 아이가 평온해지고, 매번 부모와 싸우던 아이가 더 이상 갈등하지 않는다고 하고요. 그리고 스스로 뭘 하려고 한다고 해요. 아마 아이들이 기성 교육시스템과 잘 맞지 않아서 힘들었던 것을 화를 내거나 부모와의 다툼으로 표현을 했던 거 같아요.
Q. 삼무곡을 졸업한 학생들의 근황을 알려주세요.
기본적으로 삼무곡을 졸업했다는 것은 자기 내면에 스승이 있다는 뜻이에요. 삼무곡은 ‘배우는 법을 배우는 학교’니까요. 이 배움이 없으면 졸업을 못해요. 그런 것을 아는 친구들이니까, 사회 구성원으로서 곳곳에서 자기 역할을 다 하고 있어요.
우선 대학에 진학한 친구들이 있어요. 정말 뭔가 학문적으로 배울 것이 있다고 스스로 필요로 해서 가는 거죠. 그리고 ‘푸른 하늘’이라는 닉네임으로 가수 활동하는 친구도 있어요. 통기타 가수인데 공연도 종종 한다고 하더라고요. 부모님 일을 돕는 아이도 있고, 셰프가 되겠다고 요리를 배우러 간 친구도 있고, 천연 염색 작가로 활동하는 친구도 있어요. 영화를 하겠다는 친구도 있는데, 얼마 전 지평선 청소년 영화제에서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로 금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자기 인생을 충분히 살고 있는 거죠.
▲삼무곡의 수업
Q. 취재 중 기억에 남는 장면은?
마지막 엔딩 부분에 ‘인생의 전문가’라는 노래를 부른 학생 기억나시나요? 다큐에는 안 나오는데, 이 친구를 ‘개인 팔로우’ 하다가 산에서 고생을 한 적이 있어요. ‘길을 잃고 스승을 만나라’라는 과제를 하는 것을 찍으려고 따라갔는데, 이 친구가 길이 없는 산으로 올라가더라고요. 젊은 친구는 저만큼 앞서가는데, 길이 없는 험한 산을 따라가려다 보니 저는 뒤에서 쫓아가기 바빴죠. 당연히 촬영도 제대로 못했어요.
이날도 이 학생은 산 위의 나무를 보고 깨달음을 얻었는데, 저는 힘들기만 했어요. 저는 그날 촬영을 마치고 서울로 다시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힘들어서 서울도 못 가고 삼무곡에서 하룻밤을 잤어요.(웃음)
▲삼무곡 졸업식을 취재 중인 박동덕 감독
Q. 뉴스타파함께재단과의 협업을 얘기할까요. 독립감독으로서 첫 협업인데, 이전 작업과 차이가 있나요?
이번엔 ‘번 아웃’이 오지 않았어요. 기존 방송사 외주PD로 일할 땐 작업이 끝나면 매번 몸이 많이 힘들었거든요. 예전에 <휴식의 기술>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적이 있는데, 방송을 마치고 병원에 입원까지 했습니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하더라고요. 아이러니했죠.
거의 매번 그랬던 거 같아요. 하지만 이번 <아주 이상한 학교>를 작업할 때는 달랐습니다. 물론 ‘마감’을 하고 나면 힘이 들긴 하지만, 예전의 그런 번 아웃의 느낌은 아니었어요. 이번 작업은 협업이었기 때문에 그랬던 거 같아요. 이제야 외주PD에서 독립감독이 된 것 같습니다. 아직 독립감독이라는 이름이 제겐 낯설긴 해요. 조금 부담스럽기도 하고요. 제가 ‘이런 직함을 써도 되나’라는 생각이 들고요.
Q. ‘외주감독’에서 ‘독립감독’이 됐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요?
20여 년 동안 외주제작사에서 방송 프로그램을 만들어왔어요. KBS나 EBS 같은 방송사에서 ‘인간극장’, ‘다큐프라임’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한 것이지요. 하지만 그 프로그램들은 ‘박동덕’이라는 이름을 걸고 작업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방송사의 요구대로 만든 것이니까요. 이번에 처음으로 ‘박동덕’이라는 이름을 걸고 제가 만들고 싶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습니다. 20여 년 만에 내 작품을 한 것이지요.
Q. 뉴스타파와 협업을 했는데, 방송사 외주 제작했을 때와의 차이점은?
다큐멘터리의 중요한 덕목은 다양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방송사 같은 경우엔 CP(책임프로듀서)의 입맛에 따라서 결정되는 아쉬움이 있죠. 외주PD의 목소리가 많이 잘리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리고 생계 때문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이기도 하죠. 하지만 뉴스타파는 감독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해 줬어요. 훨씬 더 자유로웠고 존중받는 느낌이었어요. 제작비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좋았습니다. 말 그대로 ‘제작지원금’이기 때문에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 보통 제작을 할땐 카메라를 빌리거든요. 예산이 이미 책정돼 있고 그에 따라 매번 책정된 렌털비를 사용하는거죠.
하지만 다큐라는 것이 예상한 촬영 회차만 찍을 수 없거든요. 하다 보면 촬영 회차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요. 이미 예산은 반영돼있고 그대로 집행하다 보면, 작품을 하는 입장에선 (예산의) 어려움이 있죠. 하지만 이번 뉴스타파함께재단과 할 때는 그런 제약이 없어서 지원금으로 카메라를 아예 하나 샀습니다. 덕분에 1년간 충분히 찍을 수 있었습니다.
Q. 이런 차이가 작품 퀄리티에도 영향을 미치나요?
그럼요. 처음엔 15~20회차 촬영을 예상했는데, 카메라를 산 덕분에 31회차 촬영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휴먼다큐를 하는 PD인데, 우리들끼리 ‘파고든다’라는 표현을 써요. 파고드는데, 시간이 오래 걸려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인터뷰이와 가까워지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그래야 인터뷰이의 진짜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거든요. 이런 게 필요하죠.
Q. 뉴스타파에 아쉬운 점이 없었는지?
아쉬운 점이라기보다 그런 걱정은 있었습니다. 내 작품을 과연 많은 사람들이 볼까? 저는 주로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많이 제작해 왔으니까요. 하지만 <목격자들> 프로그램을 생각보다 많은 시청자들이 보시더라고요. 파급력이 있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번 <아주 이상한 학교>도 10만 명 가까이 시청했는데, 이 정도면 꼭 지상파 방송으로 나가는 것을 고집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걸 영화라고 생각하면 엄청난 관객수잖아요?
▲작업 중인 박동덕 독립감독
Q. 앞으로의 계획은?
<아주 이상한 학교> 작품을 영화화하는 것을 고민 중에 있어요. 이번에 방송한 버전은 삼무곡이라는 대안학교를 다루면서 우리 공교육 시스템을 돌아보는 것이었다면, 영화 버전의 <아주 이상한 학교>는 삼무곡 구성원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제목은 <사랑>이라고 지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무엇보다 독립감독으로서 ‘번 아웃’ 없이 꾸준히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끝>
인터뷰 및 글 정리 : 장광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