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해 주셔서 큰 영광이며 감사드리오나, 추가 제작비 확보를 확신하지 못한 여건이라 포기하겠습니다” 

2022 뉴스타파 독립다큐 제작비 전달식을 이틀 앞둔 저녁, 공모 선정작인 <자본주의 연쇄살인> 송우용 독립PD에게 온 문자 메시지 내용이다. 

송우용 PD에게 연락해 이유를 물었다. 당초 받을 거라 예상했던 제작지원사업에서 떨어져 제작비 마련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다른 창구를 빨리 확보해 추가 제작비를 조달하지 못하면 약속한 기한 내 작품 완성이 힘든 상황이다. 그는 뉴스타파 목격자들 방송이 불발되는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포기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20년 넘게 독립PD로 살아남은 비결은 ‘신뢰’였다고 덧붙였다.

독립 다큐멘터리 <자본주의 연쇄살인>은 산업재해를 자본이 저지른 ‘살인’에 비유해, 노동자들이 연쇄적으로 사망하게 된 원인을 추적하는 작품이다. 

독립 다큐멘터리, 독립 영화 앞에 붙는 ‘독립’이라는 단어는 자본으로부터, 더 나아가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을 의미한다. 이런 장르적 특징 덕분에 창의적이고 날카로운 작품이 탄생하기도 하며, 관객이 문화의 경계를 넓히고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자본을 살인자라 명명한 독립 다큐가 자본 때문에 제작을 포기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라니, 더 자세한 이야기가 듣고 싶어졌다. 지난 9월 15일, 선유도역 가까이 위치한 제작사 ‘바른미디어’ 회의실에서 송우용 독립PD를 만났다.


▲서울 지하철 선유도역 부근 바른미디어 사무실

Q. 처음 뵙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송우용이라고 합니다. 첫 직장은 교양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제작사였고요. 이후 계약직으로 방송사 몇 군데 옮겨 다녔고, 그 이후엔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도 몇 개 만들었고요. 지금은 ‘바른 미디어’라는 작은 제작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송우용 독립PD

Q. 직함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감독? 프로듀서?
저는 프로듀서에 가까워요. 목숨 걸고 일하는 사람들이 감독이죠. 저는 목숨 못 걸어요.(웃음) 
전 그냥 목숨 걸고 있는 사람들이 죽지 않게 물수건 가져다 주고, 장애물이 있으면 좀 치워주고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죠. 그러다가 진짜 꽂히는 아이템이 있으면 그때 잠깐 (제 작품을)하는 거죠.

Q. 그럼 이번엔 산업재해 아이템에 꽂힌 거군요
지인들과 식사 자리에서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업재해로 사망한 김용균씨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어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사실 저도 산업재해로 두 번이나 죽을 뻔한 사람이거든요.

한 번은 대학 때 공사장에서 벽돌을 지고 올라가다가 떨어졌어요. 다행히 그물에 걸려서 목숨은 건졌어요. 운이 좋았죠. 하지만 발목을 다쳐서 일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도 현장에서 숙소 지키는 역할을 하면서 약간의 돈을 받았어요.

두 번째는 식당에서 오토바이 배달 일을 한 적이 있어요. 지금처럼 ‘배민’ 같은 게 있던 때는 아니니까, 식당에서 배달기사 고용을 다 했거든요. 그때 배달을 하다가 다리를 크게 다쳤는데 식당에서 다 나을 때까지 먹여주고 재워줬어요. 월급의 절반까지 주면서요.

그때가 92년도니까 한 30년 됐죠. 저를 그렇게 대한 사람들이 특별히 좋은 사람도 아니고 특별히 나쁜 사람도 아니었어요. 그냥 그땐 그랬어요. 저도 굉장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거 같아요. 법적으로 보호를 받지는 못했지만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암묵적으로 노동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세상이 너무 비정한 것 같아요. ‘왜 이렇게 변했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산업재해를 다루는 다큐를 기획하게 된 계기예요.

Q. 산업재해라는 게 사회적으로는 매우 중요하지만, 다큐를 만든다면 좀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요
누군가는 계속 이런 얘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저는 성공하고 싶은 욕심, 이름을 알리겠다는 욕심은 정말 없어요. 어떤 아이템에 그냥 발동이 걸려요. 저도 옛날에 도움을 받았으니까. 그때 다친 저를 쫓아냈다면 전 완전히 망하는 거였는데, 그러지 않고 먹여주고 재워줬잖아요. 

또 가만 보면 생업과는 전혀 관계없이 그냥 만드는 작품들이 나중에 잘 되기도 하더라고요.  돈이 안 되는 작업들이 남을 돕는 데는 좀 유용한 것 같기도 하고요. 얼마 전에 <안녕 미누> 라는 이주노동자 다큐를 만들었는데, 다들 그게 되겠냐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잘 됐어요.  상도 많이 받았고요. 

Q. 자본을 연쇄 살인에 빗댄 것이 인상깊어요
약간 B급 감성이죠.(웃음) 노림수는 분명해요. 산업재해는 이대로 둬선 안 되는 심각한 문제잖아요. 사람들이 많이 봤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조금 선정적으로 접근한거죠.

<자본주의 연쇄살인>은 노동이나 산업재해 문제를 쉬운 언어로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제목입니다. 

Q. ‘바른미디어’에도 함께 일하는 분들이 있을 텐데, 어떻게 운영하시는지 궁금해요
착취를 안 하는 방법으로 버티고 있어요. 제가 촬영을 할 줄 아니까 직접 촬영을 하고요. 경기도에서 제공하는 무상 오피스 공간이 있어요. 사무실은 그거 빌려서 이용해요. 이렇게 지출은 최소한으로 줄이고 스텝들 월급은 평균보다 좀 더 주면서 유지 중입니다. 유지는 되는데 저는 돈을 전혀 못 벌더라고요. (웃음) 그나마 저희는 해외에 수출도 했으니까 살았죠. 공공기관이나 정부 쪽에서 지원하는 사업도 몇 번 했는데, 한 번도 펑크를 안냈어요. 

그러니까 저는 세 가지를 잘 지켜왔어요. 약속 잘 지키고, 임금 착취 ‘덜’ 하고, 제가 일을 ‘더’ 하는 것. 뉴스타파 제작 지원을 포기한 이유도 딱 하나예요. 약속을 못 지킬 가능성 때문이죠. 

Q. 착취를 ‘덜’했다는 건 하긴 하셨다는?
처음엔 저도 그랬어요. 한 5년 정도를 관행대로  4대보험 없이 일을 시켰는데, 일하는 사람도 불만이 없었어요. 나중에 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사장이 가난하니까 얘기를 못 했을 뿐이죠. 서로 ‘형 동생 이니까’ 하고 넘어갔던 거였죠. 

누군가를 착취하지 않으면 회사가 망하는, 왜 이런 나쁜 구조가 굳어졌나 생각하면 안타까워요. 서두에 말했듯 제가 일을 시작할 때는 이렇지 않았는데 말이죠. 이 건물에도 제작사가 많은데 다들 상황이 비슷한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본주의가 다 그렇지 뭐” “우리가 자본주의 때문에 이렇게 된 거야” 이런 얘기를 해요. 그럼 사람들이 죽는 게 자본주의란 말인가? 이런 얘기를 하는 다큐를 만들고 싶었어요. 

Q. 비록 제작은 미뤄졌지만 뉴스타파 독립다큐 공모전에 선정된 소감이 어떠셨는지요?
응원받는 느낌이고 너무 고마웠죠. 강릉 MBC에서 일하는 친구한테 전화가 왔어요. “야 너 뉴스타파에 이름 올라왔더라?” 그동안 다른 제작지원 공모에서 계속 떨어졌거든요. 계속 떨어지니까 자신감도 떨어지더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동했죠. 내부 직원들에게도 “거봐 이거 해야 돼! 다시 할 거야” 이렇게 말했어요. 

*<자본주의 연쇄살인>은 내년에 제작비가 확보가 되면 그때 뉴스타파의 제작지원을 받기로 했다. 

Q. 독립PD, 독립감독과 함께 건강한 제작 환경을 만들기 위해서 뉴스타파함께재단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독립다큐 제작 생태계에 공유해야 할 정보들이 있어요. 선배 독립PD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하게 돈 버는 방법’을 널리 공유할 허브 역할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제가 가진 노하우는 해외판매예요. 한국에서 방송사 외주만으로는 돈을 못 벌어요. 해외 판매가 필요하죠. 지원사업으로 받은 제작지원금을 굉장히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독립PD도 있어요. 사실 이런 지원금만으로 제작을 하면 100% 마이너스거든요. 그런데 제작 프로세스를 천재적으로 효율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세 개의 프로젝트를 한 번의 출장으로 해결한다든가 하는. 정말 부지런해야 하고 노하우가 쌓여야 가능하죠. 

이렇게 상상을 초월하는 자기만의 노하우를 가진 분들이 있어요. 이 정보들이 널리 퍼지면 자본의 착취에서 벗어나 조금 더 건강한 환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