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함께재단이 중시하는 임무 중 하나가 미래 언론인의 교육입니다. 저널리즘의 가치는 가뭇없이 사라지고 혐오와 조롱의 대상으로 망가진 언론을 바로 세우는 데 보탬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뉴스타파 탐사저널리즘 연수 프로그램’은 2014년 여름부터 시작했습니다. 매년 여름과 겨울, 두 번씩 실시해 지금까지 106명이 연수를 함께했습니다. 

뉴스타파 제작진과 함께 4주간 교육이 끝날 때쯤, 연수생들은 주제를 잡아 취재하고 기사를 작성하는데, 2014~2016년까지 연수생들의 취재 결과물을 외부 필진이 쓴 칼럼과 함께  ‘뉴스타파 포럼’에 올려놨습니다. 하지만 지난 5년 동안 몇 차례 뉴스타파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블로그 형식의 포럼 페이지는 홀로 떨어져 방치됐습니다. 재단 설립 1주년을 맞아 연수 결과물을 재단의 홈페이지 ‘함께의 열매’로 옮겨 정리하기로 했습니다. 비록 기성 언론과 비교해 미숙하고 투박한 내용이더라도 탐사보도를 갓 배워 올바른 저널리즘을 실천하려는 미래 언론인들의 열정과 투지가 오롯하게 담긴 소중한 자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공개할 두 번째 연수생 결과물은 2015년 겨울 연수에 참여한 오수영 연수생이 쓴 기사입니다. 매년 기초생활수급자 중 6만 명이 기초연금을 포기하고 있다고 하는데요. 기초연금이 소득 인정액으로 잡혀 기초생계비에서 그만큼 차감되기 때문입니다. 당시 연수생인데도 직접 기초생활수급자를 만나 취재한 것인데요. 기사를 쓴지 6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오수영 연수생은 현재 SBS의 경제전문 채널인 SBS Biz에서 취재기자로 있습니다.


기초연금이냐 기초생활급여냐, 그것이 문제로다…‘노인복지의 그늘’

기초연금과 기초생활수급자 제도 잘 운영되고 있나 봤더니…

영등포역 6번 출구로 나가서 왼편으로 한 블록 걸은 후 왼쪽을 보면 ‘요셉의원’이 보인다. 그 바로 맞은편에 ‘광야홈리스복지센터’라는 간판을 단 무료급식 식당이 있다. 그 곳을 시작으로, 영등포 쪽방촌 550여 세대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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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만순 할아버지 통장 내역 일부 ⓒ오수영

정만순(85) 할아버지는 기초연금 대상자이자 기초생활수급자 겸 장애수당 대상자다. 42년여 전 경기 포천에 살 때 최전방 공사 현장에서 근무 중 복숭아뼈를 크게 다쳐 지체장애 6급이 됐다. 건설 자재를 옮기다 추락한 탓이었다. 당시 병원에서는 다리를 잘라내야 한다고 했지만 극구 거절했다. 15년 전 목에 검지만 한 인공뼈 2개를 심은 후 장애인증이 ‘지체장애 4급’으로 바뀌었다. 정 할아버지는 매달 20일(또는 19일)에 ‘공금장애수당’ 3만원을 받는다. 이번 달부터는 4만원으로 올랐다.

1인 가구 기초생활수급자는 488,060원을 받는다. 하지만 기초생활수급자가 기초연금 대상자일 경우, 기초연금이 ‘소득인정액’이 돼버린다. 정 할아버지는 매달 25일에 ‘공공기초연금’ 20만원과 ‘공금영등포구 복지국’ 5만원을 받는다. 이 둘이 오롯이 ‘소득인정액’이 되어 정 할아버지의 기초생활급여에서 공제된다. ‘488,060-250,000=238,060(원)’이 되는 셈이다.

그런데 통장내역을 보면 정 할아버지의 기초생활급여는 ‘147,160+41,590=188,750(원)’이다. 기초생활급여는 생계급여와 주거급여의 합이기 때문이다. 정 할아버지는 원칙대로라면 238,060원을 받아야 하는데 매달 49,310원을 덜 받아 온 것이다. 이번 달부터는 생계급여가 155,920원, 주거급여가 44,050원으로 올라 기초생활급여가 총 199,970원이 됐다. 하지만 아직도 238,060원에서는 38,090원 모자란다.

부양의무자가 있으면 기초생활수급액에 변동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정 할아버지는 가족이 없다. 젊은 날 가정을 이뤄 경기 포천에 함께 살았지만, 아내가 죽은 후 자녀 둘을 노모에게 맡기고 홀로 서울로 왔다. 그 후 고아가 된 자녀를 수소문 해 광주로 시집 간 딸을 찾긴 했지만 연락이 자주 닿진 않는다.

육군 하사로 6․25에 참전했던 정 할아버지는 ‘지로국가보훈처’라는 이름으로 매달 17만원을 받는다. 이번 달부턴 만원 올라 18만원이다. ‘호국영웅기장증’과 훈장도 쪽방 안에 걸려 있다. 하지만 그 17만원이 정 할아버지의 기초생활급여 ‘소득인정액’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포함된다면 할아버지의 기초생활수급액이 68,063원으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영등포구청 사회복지과 생활보장팀 박지희 주무관은 정 할아버지가 자신의 소득인정액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직접 동 주민센터나 구청을 방문하여 통합조사표를 받아볼 수 있다고 말했다. 몸이 불편해 은행에서 돈을 인출할 때에도 지인에게 부탁하는 정 할아버지의 경우 관공서에 직접 방문하기 어렵다. 통합소득조사표 상세내역을 받아본 후 잘못된 내용을 확인하기까지 난관이 예상된다.

소득인정액이 25만원으로 추정되고 부양의무자가 없는 정 할아버지의 경우 기초생활수급자가 두 달에 한 번 씩 20kg짜리 쌀 한 포대를 반값에 구매할 수 있는 제도의 대상자이기도 하다. 쌀값은 생계급여에서 공제돼 입금된다. 하지만 정 할아버지의 통장내역엔 두 달에 한 번 씩 일정액이 차감된 흔적이 없다.

정 할아버지는 다음 달 6일 백내장 수술을 앞두고 있다. 전립선약, 뇌경색 약을 매일 먹고 있다. 뇌경색으로 오른쪽 상반신을 못 쓴다. 예전에는 노인복지관도 꽤 오래 다녔지만, 몸 이곳저곳이 아프게 된 후로는 아예 못 갔다. 쪽방촌에 친구가 딱 한 명 있는데 형제처럼 지낸다. 술을 끊어야 해서 2년 전부터는 그 단짝친구와 술동무 해주지도 못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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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순택(67) 할아버지가 사는 쪽방으로 올라가려면 경사각이 60도쯤 돼 보이는 계단을 앞으로 어깨를 숙인 채 올라야 한다. 윤 할아버지는 기초연금 제도를 ‘중산층만 좋아진 제도’라고 했다. 기초노령연금이 기초연금으로 바뀐 후에도 윤 할아버지가 나라에서 받는 돈은 48만원 그대로였다. 이번 달에 만 몇백 원이 올라서 이젠 49만원 정도 받는다.

윤 할아버지의 여동생 윤혜숙(55) 씨는 화곡동에 남편, 아들과 산다. 아주 조그마한 교회를 운영한다. 월세와 생활비가 매달 210만원 든다. 교회에 사람이 너무 없어 운영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사람들은 십일조만 내도 교회 덕을 볼 수 있는 큰 교회를 선호한다. 여동생 네 생활이 너무 어려워서 윤 할아버지는 자신의 수급비 48만원 중 20만원을 매달 여동생 네에 준다. 윤 할아버지는 월세 15만원까지 내고 나면 수중에 딱 13만원이 남는다. 그 돈으로 한 달 간 생활해야 한다. 그저께는 여동생 집에 쌀도 한 가마니 날라다 주고 왔다.

윤 씨의 아들, 즉 윤 할아버지의 조카는 연세대 2학년을 마쳤다. 등록금은 1년에 800만원 남짓이다. 장학재단 도움을 빌려 학교에 다니고 있고, 매일 고구마를 싸서 학교에 다닌다.
“연세대학교는 사립이라 그런지 부자들이 아주 많아. 다른 애들은 막 비싼 것도 잘 사먹고 밴 타고 다니고 그런대. 학교에 고구마 싸서 다니는 사람은 그 사람밖에 없다는 거여, 내 조카밖에.”

사실 윤 씨는 아들이 둘이다. 큰 아들은 전투경찰 제대 후 부산에 내려가 공부를 해서 강의하는 강사가 될 건데, 그때까지 최소 1년은 연락이 안 될 거라 한 후 소식이 끊겼다. 큰 아들은 “군도 제대했고, 장성한 사회인이라 비정규직이라도 되면 월 150은 벌”테니 나라가 보기엔 ‘부양의무자’인 셈이다. 얼마 전 윤 씨가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 주민센터에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전혀 10원 짜리 하나도 혜택이 없었”다.

작년 12월 초에 ‘송파 세 모녀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All or Nothing’식 복지제도는 여전히 복지 사각지대를 만들고 있다. 법안은 부양의무자 기준도 완화시켰지만, 가족과 연락이 끊긴 장남은 여전히 ‘부양의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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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태영(67) 할아버지는 기초연금 대상자인데도 연금을 신청하지 않았다.
“기초연금 받으면 수급비에서 다 까버리는데 뭘. 줬다 뺏는다고들 그러잖아. 그래서 난 아예 신청조차 안 했어. 박근혜가 거짓말 한 거야.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준다고 해놓고, 수급자들 40만 명은 뺏어.”

영등포 쪽방촌 입구의 ‘광야홈리스복지센터’는 광야교회 산하에 있다. 복지센터 2층에 쪽방상담소가 세들어 있다. 쪽방상담소에 어르신들이 기초연금 신청 관련 문의를 해 오면, 사회복지사들은 “어차피 (돈) 깎이니까 그냥 신청하지 마시라”고 한다. 기초생활수급액은 매달 20일, 기초연금은 매달 25일, 이렇게 돈 들어오는 날짜가 다르다. 기초연금을 신청 하나 마나 어르신 한 분께 들어가는 액수는 같은데, 괜히 입금일이 다르면 혼란만 주기 때문이다.

차 할아버지는 병원 정신과에 다닌다. “1년 열두 달 약을 먹”는다. 우울증 치료제와 수면제다. 병원에 가서 약을 타 오지만 의료급여를 받기 때문에 병원비는 내지 않는다. 의료급여에는 1종과 2종이 있는데, 일반적인 기초생활수급자의 경우 1종이다. 차 할아버지를 포함한 대부분의 쪽방촌 노인들은 의료급여 1종 수급자다. 2종 수급자는 많지 않다. ① 일정한 거소가 없고 ② 행정관서(경찰서, 소방서 등)에 의하여 병원에 이송됐으며 ③ 응급의료(응급처치 및 응급진료)를 받은 응급환자라는 사실이 의사진단서상으로 확인됐고 ④ 신분증 또는 신원조회를 통해서 부양의무자가 없거나 부양의무자가 있어도 부양능력이 없거나 부양을 기피하는 것으로 파악된 사람. 이 4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기초생활수급자가 2종 의료급여를 받는다.

문래동에 있는 영등포구 노인종합복지관은 차 할아버지에겐 너무 멀다. 차 할아버지의 소일거리는 TV를 보거나 집에 있는 스마트TV로 컴퓨터를 하거나 잠깐 밖에 나와 동네 아는 사람과 얘기 나누는 게 전부다. 알고 지내는 사람이 몇 있긴 하지만 밥을 같이 먹는 경우는 없다. “돈들 다들 없는데 누가 밥을 사줄 거여” 다들, 밥은 집에서 혼자 해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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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 누런 개는 검정 강아지의 어미다. 장성한 자식은 연로한 어미보다 몸집이 훨씬 크다. 둘은 ‘24시간 청소년 통행금지구역’이라는 표지판이 서 있는 영등포 쪽방촌의 마스코트 쯤 된다. 오른편 저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 너머에는 ‘문래 자이’ 아파트 대단지 1,302개 세대가 들어 서 있다.


글․사진 뉴스타파 연수생 오수영
osueyoung@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