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의 저출산 대응, 사업인가 사역인가①
‘반공’ 내세워 가족계획 적극 동참…20년 만에 합계출산율 6.3에서 1.6으로
2018년, 대한민국의 합계출산율은 0.98을 기록해 사상 처음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에도 출산율은 무섭게 떨어졌다. 2019년 0.92, 2020년 0.84, 2022년 0.78, 2023년 0.72까지 내려오자, 위기는 공포로 바뀌었다. 해외 석학마저 “와, 한국은 완전 망했네요”라는 코멘트를 남길 정도였다.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하고 있다는 전망이 잇따르며, 사회가 존속하지 못할 것이라는 공포가 온 나라를 뒤덮었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수치를 받아 들자, 정부건 민간이건 너도나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며 분주해졌다. 개신교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런데 번지수는 틀렸다. 한국교회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은 저출산 현상을 가리켜 “하나님보다 세상과 쾌락을 더 사랑하고 자기만을 사랑하는 개인적 생각”(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전 의원·사랑의교회 장로)”, “동성혼·동성애를 허용하거나 획일적이고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고 하는 여러 움직임”(국민의힘 김기현 전 대표·울산대암교회 장로) 등 ‘개인주의’와 ‘동성애’를 타깃으로 삼아 열을 올리고 있다.
저출산을 대하는 한국교회의 태도는 이율배반적이다. 군사정권 시절에는 앞장서서 정부의 가족계획 사업을 지지·옹호하고 선전에 앞장서 왔으면서, 이제는 인구가 줄어들 위기에 처하자 젊은 세대 탓을 하고 있다. 종교계 본연의 역할을 한다며 ‘인식 개선’에 나선다면서도, 해결책으로는 시대착오적 논리만 반복하고 있다.
사실 개신교는 출산에 대한 일관된 기조를 유지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저출산 현상의 구원투수를 자처하며 이 문제를 교회의 ‘사업 아이템’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반세기 가까운 시간 한국교회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접근해 왔는지, 오늘날은 어떠한 입장인지, 그리고 한국교회의 이러한 움직임이 과연 저출산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지 등을 살펴본다. – 편집자 주
“1960년대부터 국가적으로 실시된 ‘가족계획 사업’은 당시의 청년 세대를 미혹하였으며 이는 현재의 저출산 비혼주의라는 물결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뉴스앤조이-나수진 기자] 지난해 10월 27일 서울 도심 일대에서 열린 보수 개신교인들의 10·27 집회 ‘100대 기도 제목’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당시 강력하게 시행된 산아제한 정책이 오늘날 저출산 현상의 주요 원인이라는 주장이었다. 또 다른 기도 제목에는 “결혼과 출산은 여성에게 전적으로 손해라고 말하는 페미니즘 사상에 젖어 부지불식간에 젠더 갈등과 저출산 비혼주의의 확산에 협조하고 있었음을 회개하게 해 달라”고 적혀 있었다.
이승만·박정희로 시작해 이명박·박근혜·윤석열로 이어지는 보수 정권을 적극 옹호하는 보수 개신교가, 갑자기 인구 계획을 강력 추진한 박정희 탓이라도 하는 걸까. 정부 정책에 맞서 ‘예언자적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을 회개하는 걸까. 아이러니하게도 그렇지 않다. 당시 민간에서 가족계획 사업을 주도적으로 수행한 곳은 주류 개신교였기 때문이다.
1960~1980년대 한국교회는 정부의 산아제한 정책을 적극 지지했다. 출산을 조절하는 것이 신앙적으로도 바람직하다는 교리적 배경까지 덧붙였다. 교계 지도자들은 무분별한 출산이 ‘여성에게 손해’라는 식의 논리를 펼치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는 저출산의 원인을 산아제한 정책과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며, 정반대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개신교의 출산에 대한 태도는 시대와 정권에 따라 변해 왔다. 선교 초기와 전후 베이비붐 시대에는 교세 확장 등을 위해 출산을 장려하던 교회가 박정희·전두환 군사정권 때에는 정부의 인구 정책에 편승해 산아제한 지지로 입장을 바꿨고, 정권과 좋은 관계를 맺으며 기득권으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2000년대 들어 저출산 문제가 국가적 위기로 대두되자, 다시 출산을 독려하는 것으로 방향을 바꿨다.
해방 이후: 산아제한 운동
처음 제안한 이는 선교사 “침투해 오는 공산 세력 방어해야”
해방 이후 한국에서 가족계획 운동을 처음으로 제안한 사람은 개신교 선교사였다. 전쟁 직후인 1954년 한국에 온 오천혜(George C. Worth) 선교사는 대구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중 영양실조에 걸린 아이들이 집집마다 예닐곱 명씩 방치된 모습을 보고는 가족계획 운동을 시작했다. 가족계획이란 부부가 자녀의 수와 터울을 계획해 조절하는 개념이었는데, 사실상 출산을 억제하는 것이었다. 그는 소책자 <기독교와 인구 문제>(1961) 등 수많은 단행본·원고를 발간했고, 미국인구계획협회 한국사무소 대표, 대한가족계획협회 이사로도 활동했다.
“10여 만 평방킬로미터(남한 면적)란 좁은 이 땅에 더욱이나 의식주에 허덕이는 오늘에 이렇게 인구가 조밀하고 또 매년 70만(대구 시민 정도)이 증가되고 있다는 것은 우리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와 인구 문제> 중)

오천혜 선교사는 과잉 인구에서 오는 식량 궁핍, 자원 고갈, 환경오염 등은 어느 하나도 간단히 해결될 수 없다며, 이를 “핵전쟁으로 인한 위협 못지않게 인간의 삶과 생존을 위협하는 대사건”으로 비유했다(1974년 5월 5일 <기독교사상> 5월호 ‘좁아지는 지구’). 또한 피임과 가족계획이 여성의 건강을 보호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하는 데도 필수적이라면서, 개신교인들이 가족계획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다고 했다.
“출생 후에도 아기로 인한 여러 가지 일로 건강에 무리가 오게 되며 정신생활(신앙생활)에도 큰 지장이 생긴다. 많은 숫자의 양육은 아이들에게도 충실한 보호를 하기 어려우며 특히 기독교 가정에선 철저한 자녀들의 신앙 지도에 곤란한 점이 있다.” (1974년 5월 5일 <기독교사상> 5월호 ‘좁아지는 지구’ 중)
“우리의 생활 목표는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점에 두어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 개인의 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할 수 있도록 지나친 빈곤과 범죄와 쇠약으로 인한, 혹은 무책임한 자녀 출생을 제거하기 위하여 가족계획을 필요로 할 것이다.” (<기독교와 인구 문제> 중)
자못 인도주의적 관점에서 출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가족계획은 당시 반공주의와도 결합됐다. 오천혜 선교사는 인구 증가는 남한의 경제적 발전을 저해하고, 국가가 빈곤해지면 공산 세력의 확산을 방어할 수 없게 된다는 논리를 덧붙였다.
“우리 기독교는 인구 문제를 다각도로 취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인류 사회의 부패 문제와 국제적 전쟁 해소도 중요하려니와 가난의 구제를 매개로 하여 점점 침투해 오는 공산주의 세력을 방어한다는 것은 현대 기독교인에겐 가장 중요한 문제다. (중략) 이 지구상에 하나님의 주권을 무시하는 유물주의의 세력이 점점 확대된다는 것은 기독교와 자유 우방에 대한 무서운 위기이며 이것을 막는다는 것은 성서가 교훈하는바 우리의 직접적 사명이라 아니할 수 없다.” (<기독교와 인구 문제> 중)

군사정권 시기: 가족계획 시작
가톨릭은 반대, 개신교는 지지 혹은 침묵
박정희 정권은 1961년 민간에서 이뤄지던 가족계획 운동을 국책 사업으로 공식 채택했다. 경제개발 등 군사정권의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인구 억제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정부는 전국 보건소에 가족계획 상담소를 설치하고, 각 읍면에 가족계획 요원을 배치해 피임 기구 보급과 홍보 활동을 벌였다.
아예 정부가 직접 임신중절을 독려하기도 했다. 1973년에는 모자보건법을 제정해 임신중절수술을 부분적으로 허용하고, 흡입기를 이용한 임신중절 시술인 ‘월경 조정술’ 사업에 예산을 지원했다. 지역과 농촌에는 영구 피임 및 임신중절 시술을 시행하는 ‘낙태 버스’가 운영됐다.
가톨릭에서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한국천주교주교단은 1961년 9월 26일 ‘인구 문제와 산아제한’이라는 제목의 교서를 발표하고, “산아제한을 장려하면 방탕자들의 음행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했다. 대신 △결혼 연령의 연장 △축첩 폐습의 단호한 시정 △극기의 정신으로 주기적인 금욕 △해외 이민 △외국 원조 요청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반면 주류 개신교의 입장은 교단을 불문하고 ‘절대적 지지’에 가까웠다. 당시 유일한 교회 연합 기관이자 개신교를 대표하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교회협)는 1971년 12월 9일 교회지도자회의를 열고, 가족계획 사업을 전국 교회 차원에서 추진하기로 했다. 당시 상황을 실은 <조선일보>의 ‘가족계획도 하나님 뜻이다’ 기사를 보면, “대다수 신교 교파들은 가족계획의 필요성을 인류의 미래와 책임 있는 부모 노릇이라는 입장에서 시인하고 있다”며 구체적인 교육과 피임 도구 보급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한 달 후인 1972년 1월에는 한국기독교가족계획준비위원회 주최로 개신교·가톨릭 교회 지도자 30여 명이 참석한 ‘기독교와 가족계획’ 세미나가 열리기도 했다. 이 세미나에서도 백민관 가톨릭대 교수는 반대 입장을 고수했지만, 개신교 패널로 나선 감신대 홍현설 학장과 연세대 김찬국 교수는 가족계획이 교리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했다.

교회협은 1972년 2월 가정생활위원회 산하에 ‘애육위원회’를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가족계획 사업을 펼쳤다. 당시 대형 교회였던 초동교회 조향록 목사가 초대위원장이었다. 애육위원회는 목회자 대상 세미나 교육, 각 지역 자원봉사자 훈련, 먹는 피임약 배부, 기독 병원 피임 시술 지원 등을 했다. 애육위원회가 매년 발간한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1977년까지 배출한 자원봉사자가 675명이었고, 이들을 통해 보급되는 피임약은 22만 1031싸이클(세트)에 달했다. YWCA연합회 등 애큐메니컬 단체들도 피임법 무료 강좌를 여는 등 동참했다.
정부와 함께 가족계획 사업을 기획하고 수행하던 주요 민간 기관에도 개신교인들이 포진돼 있었다. 정부 가족계획 사업을 전담한 대한가족계획협회의 이사장은 연동교회 이종진 장로였고, 오천혜 선교사는 이사였다. 피임 상담실을 운영했던 대한어머니회 창립자 고황경 회장도 개신교 신자였다.
가족계획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했던 교회협과는 온도 차가 있었지만, 보수 교계도 이를 암묵적으로 승인한 것으로 보인다. 서북 출신 교인들을 중심으로 반공 활동에 앞장섰던 영락교회는 당시 남전도부 주최로 가족계획 관련 강좌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72년 4월 24일 <경향신문> 보도에는 “종교라고 해서 사회의 변천에 초연할 수는 없는 것”이라면서 “낙태 이전의 가족계획 사업에는 반대할 것까지는 없”다는 영락교회 박조준 목사의 말이 나와 있다.
보수 교단 총회도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았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은 1962년 총회에서 ‘산아제한에 대한 대정부 건의안’에 대해 “임원회로 하여금 건의를 교섭케 하심이 가한 줄 아오며”라고 결의했고, 1969년 총회에서는 ‘산아제한에 대한 문의 건’이 올라오자 “성서 원리상 불가하다”고 답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도 1968년 18회 총회에서 산아제한에 대한 건에 “원칙적으로 할 수 없는 일”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나 이러한 원칙적 입장 표명 이후 총회에서는 더 이상 가족계획 관련 안건이 다뤄지지 않았다. 이들이 가톨릭처럼 정부에 반대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거나, 산아제한 반대 운동을 펼쳤다는 기록 또한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 예장합동 전 총회장 권순웅 목사는 1960년대 교회가 산아제한 정책에 편승한 것을 반성한다고 했다. 그는 2023년 출간한 <기독교와 저출산>에서 “문제는 산아제한 정책이 발표된 이후 교회가 그에 대해 성경적 관점으로 접근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오히려 교회는 시대적 상황에 편승하면서 대사회적 사명을 잊고 지낸 것은 아닌지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예장합동 다음세대운동본부가 2023년 4월 6일 연 ‘저출산 극복을 위한 개혁주의 신학 포럼’에서도 비슷한 ‘반성’이 나왔다. 이들은 이날 발표한 ‘출산 사명에 대한 교회 반성과 선언’이라는 입장문에서 “맬서스 인구론과 유사한 산아제한 운동에 대해 교회는 성경적 출산에 관한 선지자적·제사장적 사명에 침묵했다”고 했다.
정부에 늘 호응했던 개신교
인구 정책 개입하며 기득권 다져 “정부에 협력한다는 점에선 일관적”
주류 개신교계가 가족계획 사업에서 손을 뗀 건 군사정권 말기인 1987년 무렵이었다. 애육위는 1987년 3월 21일 “최근 가족계획 기구 보급 사업의 축소와 관련”해 애육위원회를 해체하기로 하고, “가족계획 약재 및 기구 보급 등 기존 사업에서 탈피, 교회 조직을 통한 주부 교육, 청소년 교육 등 사업으로 새로운 차원의 봉사를 전개한다”는 방침을 설정했다. 이후 인구가 감소 추세로 들어서면서 가족계획 사업은 1995년 김영삼 정부에서 공식적으로 종료됐다.
이숙진 교수(이화여대)는 개신교가 없었다면 가족계획 사업이 이렇게 성공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의 논문 ‘해방 이전 개신교의 가족 만들기와 생명 정치’에서 “종교계는 국가의 인구 정책을 지지하기 위하여 산아제한과 관련된 다양한 담론을 생산, 유포하고 이를 구체화하기 위한 다양한 실천적 프로그램을 제공한 핵심 공간이었다. 가족계획 사업이 실시된 직후 6.3명이던 합계 출산율이 불과 20여 년 만에 1.6명으로 감소하였는데, 이러한 성공의 배후에는 종교(인)의 지대한 역할이 있었다”고 썼다.

교파를 막론하고 반공을 중요한 가치로 여기던 주류 교회는 박정희 정권이 내세운 가족계획에 적극 개입하면서, 정권과 결합하고 교권을 강화했다. 윤정란 교수(숭실대)는 <한국전쟁과 기독교>(한울아카데미)에서 “반공 사상에 의거해 한국 기독교의 최대 목표는 남한 사회가 경제적인 부를 달성하는 것이며, 이를 최단기간에 성공시킬 수 있는 여러 가지 요소 중 하나가 가족계획 사업에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남한을 공산주의 세력으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정부의 가족계획 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수 있었다. 그 결과 한국 기독교는 1970년 폭발적인 성장을 가져왔다”고 했다.
낙태죄에 대한 개신교의 비일관적 태도를 분석해 온 김혜령 교수(이화여대)도 논문 ‘여성주의 기독교윤리학의 재생산권 변증’에서 한국교회가 “1960년대까지 피임·낙태와 관련하여 가톨릭교회와 입장 차가 있지 않았던 한국 개신교가 1970년대로 접어들면서 박정희 정권의 가족계획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집단으로 변화했다”면서 “국가의 인구정책에 적극적으로 협조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냉전 체제 이후 남한 사회 보수 정권과의 밀월 관계를 강화”했다고 지적했다.
한국교회사·기독교여성사학자 하희정 박사는 <뉴스앤조이>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주류 개신교는 반공으로 단일화돼 있었고, 신학적 원칙과 정책 사이의 모순을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다는 대체로 정부 친화적인 입장을 보였다. 더군다나 교회의 관심 자체가 성장에 매몰돼 있던 시기이기에 대사회적 고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숙진 교수도 <뉴스앤조이>에 “박정희 정권이 ‘잘살아 보세’를 내세웠다면, 교회는 이를 ‘예수 믿고 잘살아 보세’로 받아들였다. 특히 산업화 과정에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노동자들에게 교회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고,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경제 성장과 교회 성장이 맞아떨어지면서 정부와 교회가 긴밀한 관계를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교회는 가족계획 사업에도 암묵적·실질적으로 협조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 정책에 따라 개신교가 입장을 바꿔 온 것이 모순처럼 보이지만, 국가 정책에 협력한다는 면에서 일관성이 있다”고 말했다.
주류 한국교회는 진화론·동성애 문제 등에서 성서를 문자주의적으로 해석하고, 교리 해석도 매우 경직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숙진 교수의 평가처럼 인구 문제에 있어서 한국교회는 이상하리만치 정부 정책에 호응하는 일관성을 보여 왔고, 이를 위해 신학적으로도 유연함을 보여 왔다. 다음 기사에서는, ‘가족계획’을 위해 “생육하고 번성하라”를 비롯해 다산을 강조해 온 성경 구절들이 어떻게 해석되고 무력화되었는지를 살펴본다. (계속)
※ ‘한국교회의 저출산 대응, 사업인가 사역인가’ 기획은 2024년도 뉴스타파함께재단 KINN 탐사 보도 취재비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참고 문헌]
- 오천혜, <기독교와 인구 문제>, 조문사, 1961
- 오천혜·도병일, <인구 폭발과 인류의 장래>, 대한기독교서회, 1972
- 대한가족계획협회, <한국가족계획십년사>, 대한가족계획협회, 1975
- 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 <가정의 40년 길을 따라서: 가정생활위원회와 새가정 40년사>, 한국기독교가정생활사, 1996
- 윤정란, <한국 전쟁과 기독교>, 한울아카데미, 2015
- 성과재생산포럼, <배틀그라운드>, 후마니타스, 2018
- 조은주, <가족과 통치 : 인구는 어떻게 정치의 문제가 되었나>, 창비, 2018
- 다음세대목회운동본부, <기독교와 저출산>,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2023
- 행복한출생든든한미래, <저출생과의 전쟁 – 국내편>, CTS, 2024
- 최선혜, ‘1960~1970년대 한국 정부의 가족계획 사업에 대한 가톨릭의 대응’, 인간연구, 2005
- 윤정란, ‘국가·여성·종교: 1960-1970년대 가족계획 사업과 기독교 여성’, 여성과역사, 2008
- 김혜령, ‘여성주의 기독교윤리학의 재생산권 변증’, 한국기독교사회윤리학회, 2022
- 이숙진, ‘해방 이전 개신교의 가족 만들기와 생명 정치’, 한국종교사회학회, 2024